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광렬 시집 '존재의 집' 발간

김창집 2020. 12. 10. 00:31

시인의 말

 

  일찍이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했다. ‘나는 이 세계 안에 존재하는 실존적 현존자이고, 언어는 너와 나의 관계를 어떤 물음을 통해서 소통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관계에 이르고자 하는 도구(수단)’라는 말이 그 간추린 뜻.

  대부분의 시인들이 그렇지만 나 역시 이 세계에 산재하는 것들, 가령 나무, , , 바람, 하늘, , 물 등의 구체적 사물에서 삶, 죽음, 사랑, 기쁨, 고통, 절망 등의 추상적이면서 관념적인 것들, 그리고 사람, 가족, 사회 등의 여러 관계에 있어서 시를 매개로 하여 삶의 아픔과 의지와 희망에 대해 노래하고 소통하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니, 제목이 주는 무게의 버거움과 무언가 한참은 미흡한 시적 형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들의 묶음을 감히 존재의 집이라 이름 지어보았다.

  그것이 부끄러워 한참은 이리저리 망설이고 궁싯거려보았지만 뭐 어떤가, 어차피 내 시와 더불어 오늘도 나는 부족한 존재이고 내일도 그렇고 영원히 미완未完의 존재일 테니.

 

                                                                                                         2020년 겨울, 제주에서

                                                                                                                             김광렬

 

절정

 

불꽃처럼 타오르는 잎사귀가 황홀해서

단풍잎만 바라보며 걷다가

한라산 올라가는

성판악 돌밭 길 그 어디쯤에서

푹 무릎을 꺾고 말았다

살갗에 생채기가 생기고 피가 배어났다

 

너에게로 가는 일이,

이 정도로는 어림없다

 

살을 오려내고 뼈를 깎아내어야 한다

 

호박

 

내 눈에는 가만히 있으나

내 마음에는 가늘게 움직이고 있다

그 작고 여리기만 하던 것이

굵고 단단해져 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긴 탯줄 배꼽에 달고

땅바닥이나 높다란 담장 위에서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더 여물어야 한다며

뿌리는 쉬지 않고 젖을 흘려보내고

바람과 빛은 넘실거리며 입술을 비벼댄다

숙의민주주의가

민주주의 씨앗 위에서

성숙해 나가는 것처럼 호박이,

가만한 것 같지만

가만하지 않는 소리를

저 깊은 곳에서 내밀히

둥 둥 북소리처럼 울려대고 있다

 

가마우지를 위하여

 

하늘을 날다 햇빛에 녹아 바다에 떨어진

이카로스의 밀랍 날개처럼

허공으로 솟아오르다

땅에 추락한 사람의 욕망처럼

 

물에 젖어 날지 못하는 가마우지가

바위에 발톱 박고 서서

물먹은 날개를 말리고 있다

 

날개*의 주인공처럼

절망 속에서 가마우지는

한 번 더 힘껏 날아오르고 싶은 것일까

 

간간히 날개를 파닥거리며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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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개 : 이상이 쓴 소설 제목.

 

반성 1

 

늙은 매화나무가 피워낸 하얀 꽃이

왜 저리도 고운가, 했더니

 

온 몸에

 

허물딱지가 앉도록

 

밤새 뒤척이며

 

피워냈기 때문이다

 

사람의 향기

 

진창 속에서 연꽃 핀다

진창 속에서 비로소 사람꽃이 핀다

오래된 사금파리에서 옛 기억이 돋아나듯

오래된 책갈피에서 깊은 영혼의 냄새가 나듯

어둠을 헹구고 나온 그가 참 향기롭다

고통을 모르고 어떻게 꽃이 필까

꽃이어서 꽃이라고 이름 불리는 것보다

캄캄한 세상 발 디디고

서슴서슴 맑게 살아 오르는 꽃,

그 꽃이 오늘은 오로지 경전이다

 

 

                                  *김광렬 시집 존재의 집(시작 시인선 0358, 202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