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고성기 시조 '산딸나무' 외 4편

김창집 2020. 12. 16. 00:56

산딸나무

 

8월의 신부라더니

유월에 웬 눈이니

 

수북이 쌓인 눈 아래

더위 피해 서 있으니

 

치맨가

여름 겨울이

분간 없이 또 가네

 

목련이 나에게

 

그래, 넌 순수가 뭔지

거울 앞에 설 수 있니?

 

가는 봄

그 미련 하나

붙잡은 게 그리 추하다며?

 

연둣빛

활짝 연 속살

그 떨림을 알기나 하니?

 

꽃은

 

보름달 환한 얼굴

보려는 사람에게 뜨듯

 

다알리아 화사함도

보고 싶은 사람에게만 핀다

 

간절한

사람에게만

몰래 와 피는 꽃

 

사랑

 

들꽃의 독백 - 고성기

 

나도 가문이 있어요

야생화 또는 들꽃

나와 함께 사는 사람

농부들만 잡초래요

보랏빛

간드러지게 피어도

호박꽃만 못하대요

 

철모른 도시인들

이름짓기 좋아하지

물매화

미나리아재비

달맞이꽃 제비꽃

이럴 땐 튤립 같은 귀족

장미향이 안 부럽다

 

근사미로 뿌리까지

온 가족이 불붙는 날

잡놈 족보는 잡초라는

연좌제가 서러워서

야생화

신분상승의 꿈

품에 안고 울었다

 

단풍꽃

 

가을 잎이 하도 고와

가려져버린 슬픈 봄 꽃

볼그레 볼 붉혀도

보는 이 하나 없다

그래도 꿀 찾는 벌

꽃이라 찾아왔네

 

깨알보다 작을지라도

생명은 그리 익어

바람 불면 멀리 날아

실뿌리 곧게 내리고

화려한

가을을 꿈꾸는

단풍꽃을 아시나요

 

 

                       *고성기 시집 섬에 있어도 섬이 보입니다(파우스트 시선, 202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