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딸나무
8월의 신부라더니
유월에 웬 눈이니
수북이 쌓인 눈 아래
더위 피해 서 있으니
치맨가
여름 겨울이
분간 없이 또 가네
♧ 목련이 나에게
그래, 넌 순수가 뭔지
거울 앞에 설 수 있니?
가는 봄
그 미련 하나
붙잡은 게 그리 추하다며?
연둣빛
활짝 연 속살
그 떨림을 알기나 하니?
♧ 꽃은
보름달 환한 얼굴
보려는 사람에게 뜨듯
다알리아 화사함도
보고 싶은 사람에게만 핀다
간절한
사람에게만
몰래 와 피는 꽃
사랑
♧ 들꽃의 독백 - 고성기
나도 가문이 있어요
야생화 또는 들꽃
나와 함께 사는 사람
농부들만 잡초래요
보랏빛
간드러지게 피어도
호박꽃만 못하대요
철모른 도시인들
이름짓기 좋아하지
물매화
미나리아재비
달맞이꽃 제비꽃
이럴 땐 튤립 같은 귀족
장미향이 안 부럽다
근사미로 뿌리까지
온 가족이 불붙는 날
잡놈 족보는 잡초라는
연좌제가 서러워서
야생화
신분상승의 꿈
품에 안고 울었다
♧ 단풍꽃
가을 잎이 하도 고와
가려져버린 슬픈 봄 꽃
볼그레 볼 붉혀도
보는 이 하나 없다
그래도 꿀 찾는 벌
꽃이라 찾아왔네
깨알보다 작을지라도
생명은 그리 익어
바람 불면 멀리 날아
실뿌리 곧게 내리고
화려한
가을을 꿈꾸는
단풍꽃을 아시나요
*고성기 시집 『섬에 있어도 섬이 보입니다』(파우스트 시선, 2020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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