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이을순 소설집 '고백' 발간

김창집 2020. 12. 27. 13:31

*작가의 말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마음에서 피워낸 꽃들을

이제 세상 밖으로 내보냅니다.

비록 화사한 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잡초 속에 섞여 자란 꽃들이라

그 은은한 향기는 오래 지속될 겁니다.

 

2020년 노을이 지는 창가에서

이을순

 

작품집 내용

 

단편 바람새

단편 당신의 노래

단편 그대와 함께 탱고를

중편 고백

단편 플로리다에서 온 편지

 

이을순 작가는

 

충남 논산 출생

네 살 때 제주로 이주 후 지금도 제주에 살고 있음.

2004년 계간 대한문학에 단편소설 안개숲으로 등단.

한국소설가협회, 제주문인협회 회원.

 

서간집 : 종이 위에 핀 꽃

소설집 : 떠도는 자들의 섬, 고백

장편 소설 : 그 여자의 방

 

단편 바람새중에서

 

   창으로 비스듬히 들어오는 햇살은 얼음 속 칼날처럼 차갑게 빛난다. 저절로 시선이 내리깔렸다.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는 바다에는 고깃배가 파도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다. 그게 마치 그리운 사람을 찾아 떠나가는 배처럼 보인다. 내가 지금 그 어디엔가 있을 그를 막연히 만나러 가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엔 그를 만날 수 있을까. 만약 만나면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까. 그동안 당신을 그리워하며 기다려왔다고 말해야 할까. 그러나 나는 부정의 투로 고개를 내젓는다. 한번 떠난 배는 돌아오지 않는 법이다. 설령 돌아온다고 해도 너덜너덜하게 찢긴 상처만이 핏빛 깃발처럼 꽂은 채 돌아올 뿐. 이미 그가 떠난 빈자리엔 얼룩진 상처의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불온한 지난 상처가 가슴에서 급류처럼 휩쓸고 지나가자 두 눈을 감아 버린다. (pp.10~11)

 

단편 플로리다에서 온 편지중에서

 

   아내의 책장 맞은 편 벽 쪽으로 문학의 거장들의 인물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루소, 카뮈, 칸트, 스탕달, 장폴 사르트르, 카프카. 그들은 주인이 없는 방을 마치 충직한 파수꾼처럼 지키고 있다. 나는 무언가 부정하고 싶은 눈길로 그 거장들의 사진을 가만히 응시한다. 아내는 밤마다 저 사진 속의 정령들과 묵시적인 대화를 나누었으리라. 자신의 글쓰기가 한계에 걸려 넘어질 때마다 저들의 정령이 내면으로 깊이 스며들기를 간절히 원했으리라. 그들에게 묻고 싶다. 이보시오. 위대한 문학의 거장들이여! 당신들은 아마도 내 아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을 거요. 지금 내 아내는 어디에 있소? (p.203)

 

 

                               *이을순 소설집 고백(도서출판 청어, 2020)에서

                               *사진 : 중편 고백에 나오는 팔공산 동화사를 비롯한 불교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