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의 선물 - 洪海里
아내가 갔습니다
시집 네 권을 내게 선물로 주고,
『치매행致梅行』(2015, 황금마루)에는
시 ‘다 저녁때 –치매행致梅行․1’로부터 150편의 시가 안치되어 있고,
『매화에 이르는 길』(2017, 도서출판 움)엔 ‘해질녘 –치매행致梅行․151’로부터
230번까지 80편의 시가 들어 있고,
『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2018, 도서출판 움)안에는
‘오늘도 눈썹은 천근이다 –치매행致梅行․231’로부터 330번까지
100편의 작품이 시창고를 채웠고,
『이별은 연습도 아프다』(2020, 놀북)속에는
‘치과에서 –치매행致梅行․331’을 비롯하여 421번까지
이별 연습을 하는 9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남천 열매가 빨갛게 익고
단풍나무 물든 잎이 우수수우수수 지고 있는
낙엽길을 따라 아내는 갔습니다.
하늘이 맑고 푸르러 별이 보이지 않습니다
눈물로 씻은 작은 별 하나
무한 천공에서 저녁마다 반짝일 것입니다.
♧ 고산지송高山之松 - 김영호
비바람이 강하게 때릴수록
눈물은 푸른 잎사귀를 흔드네.
눈발이 세차게 때릴수록
피는 더욱 곧은 가지를 뻗네.
땡볕이 뜨겁게 내리쬘수록
뿌리는 더욱 굵게 땅속을 박네.
높은 산정에 무릎을 꿇은
저 가슴 큰 소나무
지구를 흔드는 기도소리로
시대를 깨우고
하늘 문을 두드려
세상의 신음을 전하네.
♧ 회색빛 도시 – 정성수
아파트들은 나무처럼 자랐다 창문마다 구멍이었다
안에는 짐승들이 살고
고독은 거대했다
밥을 먹어도 배는 여전히 고팠다
회색빛 도시에서 유일한 사랑은 안아주는 것이다
가끔은 허리가 뻐근했다
달력이 떨어져 나갈 때마다
짐승들은 울었다
외롭다는 생각이 고독을 덮쳤다
철없이 피는 꽃들은
시도 때도 몰랐다
삶을 묻고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꼭대기를 바라봤다
21세기 층이 마지막이었다
♧ 겨울새 – 도경희
꽝꽝 계곡이 울리도록 우는
비오리 청둥오리 지오리
하얀 억새 사이
햇살을 차며
풀럭풀럭 날아오르는
야생의 언어들
때 묻은 내 영혼 밝혀 주려고
더 멀리 날고
더 높이 물을 차고 오르며
세상 넘어 덩굴을 뻗는다
눈시울 붉히는 꿈이 된다
♧ 수석壽石 - 이화인
천년 묵언 수행하시더니
몸에 꽃이 피었습니다
단단한 먹돌도 속을 비우니
돌이 꽃이 되었습니다
만년 면벽 수행하시더니
까막돌 등신불로 오시여
천년만년 시들지 않을 꽃
모란 국화가 피었습니다
춤 잘 추는 나비도 불러들여
사부작사부작 춤을 춥니다.
♧ 이방인 시편 - 장성호
-테스형
서초 고속도로변 오솔길
느닷없이 소나기 쏟아진다
길모퉁이 나무벤치에 엎드려 있는 수염 덥수룩하고 얼굴 누렇게 뜬 한 남자
오도 가도 못하고 앙상한 갈비뼈 속까지 흠뻑 젖는다
그는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어제도 오늘도 정처 없이 떠돌았다
그는 숲속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마음을 터놓고 사랑에 대하여 토론을 즐겼다
그는 숲속의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숲의 정령들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매한 군중이 준동하는 숲속에서 결국 쫓겨나고 가족들과도 생이별을 했다
이제 가진 것 하나 없고 병든 몸뚱이에 불과한 그는 그렁그렁한 눈망울과 불어터진 입술로 저 깊은 숲속을 향하여 테스형을 애타게 부르고 있다
나의 소크라테스형
사랑 말고는 아는 게 없다던 테스형
내 몸이 썩어 없어져도 내 영혼은 계속 숲속에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겠어요
저기 축축이 젖은 누런 나뭇잎
나무벤치에 달라붙어 가쁜 숨을 내쉬고 있다
숲속에 나훈아가 부르는 노래 ‘테스형’ 빗물에 녹아들고 있다
* 월간 『우리詩』 391호(2021. 01.)에서
* 사진 : 흰 애기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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