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우리詩' 5월호의 시와 유동나무 꽃

김창집 2021. 5. 1. 01:29

늑대와 개의 시간에 - 차영호

 

   둑길을 걷다가 물 건너는 목성을 만난다 별이라고 늘 하늘에서 눈만 깜짝이는 것은 아니라며 넌지시 허벅지를 더듬어 당긴다 분홍이 검정 속으로 스미기 직전 느닷없이 변기 물 내리는 소리

 

   선뜩,

 

   예리한 면도날이 콧등을 가른다 아 압시향 鴨屎香……내가 니 체취를 기억하는 것은 내 마음속 체 눈이 너무 촘촘하기 때문일까

 

   곤혹스러울수록 고요해지는

  

   바람

 

꽃 마중 장문석

 

오랜만에 면도를 한다

하얀 와이셔츠에 분홍 넥타이도 맨다

퇴직한 지 삼 년, 처음인 듯 어색하다

그러나 설렌다

아내가 눈이 휘둥그레져

어디 젊은 년이 생긴 거 아니냐며

아침 내내 의심의 눈초리다

 

어제 근린공원을 배회하다

목련을 만난 것이다

꽃 몽우리 새초롬한

그래서 오늘 개화할 것이 분명한

목련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말하자면 오늘이 첫 상견례인 것이다

어찌 의관을 정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목련 - 나병춘

 

웃을 때마다

팡팡 터지는 자줏빛 꽃봉오리로

 

빗방울에 젖어

애잔한 눈물에 젖어

 

온종일

터지고 있었네

 

봄을 끙끙

앓고 있었네

 

기도의 힘 - 이화인

 

몹쓸 역병이 돌던 그 겨울

봄이 죽었다고

봄은 절대 오지 않을 거라던 그해에도

봄은 거짓말처럼 왔다.

 

기도의 힘은

길 끝에서 새 길이 시작되고

막장 앞에서 통하는 곳이 보였다.

 

그것은 기적이 아닌 기도의 힘이었다.

간절한 기도의 힘은

절박한 고비마다 꽃으로 피었다.

 

세월 참 빠르네 - 민문자

 

봄빛 찬란한 날 청첩장을 받아드니

삼십여 년 전 우리 회사 사내 커플

남편의 주례로 만인의 부러운 시선을 받던

신랑신부 탄생하던 날 엊그제 같아라

 

예쁜 딸 낳아 길러 신부의 부모로

하객을 맞이하고 있는 중년부부를 보니

옛날 회사를 경영하던 추억이 어른거리네

누구나 선망하던 청춘남녀였었지

 

코로나19 거리 두기 정부 시책에 따라 참석

결혼식 축하하는 마음은 다시 없이 뭉클

전문대학 교수 되고 화장품 사업도 성공이라니

우리가 그들의 텃밭이었던 과거가 자랑스럽네

 

청신한 미남미녀 같은 듯 다른 멋진 신랑신부

1990년과 2021년의 아주 다른 결혼풍속도 보세

마스크로 얼굴 가린 하객들 못 올 데라도 온 듯

축의금 내고 선물만 받아들고 서둘러 사라지네

 

짓기 - 임승진

 

를 쓰겠다고 맘먹은 지

어언 20여 년

 

글마당에 발을 디디고

글기둥에 이름을 새기고 보니

날이 갈수록 주눅이 든다

 

무너지지 않으려

벽을 세우고 지붕도 얹었지만

처마 끝은 멀기만 하고

 

늦은 비에 젖어

시린 글 앓이를 한다

 

날마다 꽃이 피는 뜨락을 일구고자

손가락은 갈라져 쓰린데

향기 나는 이파리들 바라보며

자갈밭을 파고 또 판다

 

문득문득

가시처럼 박혀오는 글귀

누더기 같을지라도

새집을 짓듯 쓰고 또 쓴다

 

절정 꽃 - 신단향

   -상록객담

 

가시밭길 위로 내동댕이치시더니

어이하여,

대못 화살촉으로 쏘아대십니까

그것은,

사업으로나 일삼으라는 체벌이라면 좋겠습니다

아직 내 목줄은,

굶주림으로 포효하고

어두운 밤길 동행할 이 어디에도 없으니

엄동설한의 두꺼운 얼음 위로 별이 떨고 있습니다

이제,

이 겨울이 지나 오월이 오면

붉은 꽃길 위로 춘설은 더욱 살을 에겠지요

꽃잎 언 뿌리 위로 푸른 잎이 나풀거리겠지요

그때쯤일까,

이 몸의 굳은살이 가시에 찔려도 아프지 않을 시절에

달맞이꽃 한 송이 품어도 좋을는지요

 

 

                                       * 월간 우리20215월호(통권 395)에서

                                                  * 사진 : 요즘의 유동나무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