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정드리 문학 제9집의 시조(1)

김창집 2021. 5. 15. 09:26

참나리꽃 - 오승철

 

달팽이 뒷간 같네

신제주 어느 골목

어찌어찌 해장국집 끌고 온 내 아내가

얼결에 씨도둑처럼 참나리 꽃씨 받아왔네

 

여름이면 화분에 슬그머니 올린 꽃대

잎새마다 까만 씨앗 하나씩 품어내어

어디다 내려놓을까

시멘트 바닥뿐인 걸

 

그 꽃씨 다시 받아 어딜 갔나 했더니

장모님 산소 곁을

불 지르고 있었네

철 이른 벌초를 와서

불 지르고 있었네

 

내 뺨을 쳐라 - 문순자

 

첫 수확 감귤밭을 어떻게 알았을까

링링’ ‘타파’ ‘미탁그리고 하기비스

이름도 낯선 태풍들

번갈아 다녀간다

 

크든 작든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지만

생색내듯 서너 됫박 햇살은 못 보탤망정

어린 것, 그만 흔들고

차라리 내 뺨을 쳐라

 

수국 조영자

 

왜 하필 장마철이니?

그리고 웬 고봉밥이니?

 

43에 누굴 보내고

혼자 사는 저 종부宗婦

 

까마귀 모른 제사상

수북수북 퍼 담았네.

 

수선화, 괴다 - 김신자

 

그리운 이름 하나 땅속에 묻었다

건듯 부는 바람이 뭇별을 건너와서

담벼락 기대 앉아서 그대 얼굴 그린다

 

꽃 필 날 기다리며 사랑 하나 심었다

세상에다 그리움 한가득 들어차면

그 사람 바튼 숨으로 달려나와 줄까요

 

해와 달이 번갈아 수없이 날 밀어내도

꽃봉인 듯 가만가만 기다려 있을게요

찬바람 휘몰아쳐도 장승처럼 버티며

 

괸다는 건 그 사람의 온기를 데우는 일

바람이 물고 있는 떨림도 다 읽으면

어쩌면 내 가슴 왼편에 괴어 있을 수선화

 

슬그머니 강현수

 

한사코 외면하며

싱가폴로 떠난 내 딸

6년 만에 탕아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감염병, 등 떠밀려서

슬그머니 돌아왔다

 

김영순

 

서귀포 사공원에 누가 자꾸 버리나

 

봄까치꽃 괴불주머니 그리고 뚜껑별꽃

 

도대체 무단투기를 누가 허락하였나

 

인연의 첫 문장 - 이명숙

 

연인의 몸에 찍힌 천의 입술흔 너머 노을을 되작되작

울먹이는 등성이

꿈엔들 그날이라면 곁자리 선뜻 내줄 일

 

농담처럼 요요한 땅은 꽃의 성지라 붉은 달빛 선율에

귀가 폴짝 서는 밤

당신의 식욕을 위해 고양이가 돼볼 일

 

샹송처럼 말랑한 라르고로 흐르는 옛사람 현상하면

꽃빛 한겻이라도

그 순간 영원하리니 눈 감아도 좋을 터

 

신흥사 참새 - 김양희

 

봉우리 탄 구름이며 대웅전 인 바람을

큰스님과 경작하던 신흥사 참새들은

영전에

올릴 거라고는

지저귐 그뿐이라

 

스님 영결식에도 추모 다례제에도

새끼들 주둥이에 애벌레를 물리며

절 마당

흥건하도록

지저귐을 올리더라

 

 

                           * 정드리 문학 제9내게도 한 방은 있다(다층, 202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