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들림에 대하여 – 김종호
산다는 것은
순간에서 순간으로
끝없이 흔들리는 것
바람 부는
이러저러한 세상
더 얼마나 몸부림쳐야
강물처럼 유장하게 흐를 수 있나
벌새는 꿀 한 방울 얻으려고
1초에 99번의 날갯짓을 하고
꽃은 꽃이 되려고
그 겨울 땅 속에서 그렇게
얼어붙은 꿈을 밀어 올린다
순간에서 순간으로
얼마나 흔들려야 나무처럼
꿋꿋하게 서랴.
♧ 떠날 때는 2 – 김종호
떠날 때는 강물에 누워
소리 없이 흐를 일이다
소리쳐 불러도
강물은 뒤돌아보지 않고
한 시절 뜨겁게 달구더니
제비 빈 둥지가 덩그렇다
떠날 때는 달도 별도 없이
구름으로나 흐를 일이다
고물상에 널린 부서진 이야기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겠느냐
사는 것은 날마다 떠나는 일
눈물이 나면 휘파람이나 불며 가라
어느 사무친 날에
그리움도 오랜 친구이러니
달빛 서러운 네 창가에
술 한 잔 놓고 다정하리니
떠날 때는 강물에 누워
소리 없이 흐를 일이다.
♧ 나 그런 여자를 안다 - 김종호
보고 있으면 잠길 듯이 깊은
눈이 호수 같은 여자를 안다
막걸리를 벌컥벌컥 마시면서
나나무스꾸리의 물망초를 듣는
비쩍 바른 몸만 가진 여자
문학을 좋아한다며
시인들의 배설로 도배된 북새통,
저 60년대의 ‘주막’의 주인인 여자
문인들의 난삽한 잡설에 끼어
밤늦도록 자리를 뜨지 못하는 여자
사랑해서 불행했던 여인 카튜샤와
황량한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떠오르는
왠지 부축해줘야 될 것만 같은
버들잎 같은 그런 여자를 안다.
♧ 시간과 나
구름은 하늘에 그림자를 두지 않고
바람은 허공에 자국을 남기지 않네
꽃들은 보는 이 없이 아름답고
새들은 듣는 이 없이 즐겁다
보이지 않는 시간을 토막 내면서
무변한 수평선을 갈피 접으면서
스스로 배반하고
스스로 피를 흘리나
오늘도 초조하게 지는 해
‘지금 몇 시나 됐을까?’
삼백 년 소나무는 고개를 젓고
아예 문을 닫아걸고
바위는 저만 고요하네.
♧ 누가 울고 있나
바람은 떠나고
우우-
숲은 울었다
완도행 카페리는
꽃을 날리며 출항하고
와와-
가슴에 길을 내는
바다는 소리치며 울었다
수없이 오가는 사람들
어깨 스쳐가는 사람들……
길 떠나는
내가 서러운데
누가 뒤에서
모르게 울다 갔나
가는 데마다
비밀을 간직한 섬들이 있고
짙은 해무 속 섬 사이로
인어*의 노래는 손짓하는데
바다는 소리치며 부서지고
나는 또 나를 찾아 떠나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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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 : 로렐라이의 전설에 나오는, 라인 강변에서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을 홀려 난파시키는 요정.
*김종호 시집 『날개』(푸른 시인선 010, 푸른사상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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