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월간 '우리詩' 6월호의 시들(1)

김창집 2021. 6. 4. 00:26

역설 - 홍해리

 

너 없이는 한 시도 못 살 줄 알았는데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다니

찔레꽃 피우지 말아라

내 생각도 하지 말거라

네 하얀 꽃잎 상복 같아서

내 가는 길 눈물 젖는다

한갓된 세상 모든 것

있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두어라

아픔도 때로는 얼마나 아름다우냐

발자국 남기지 말고 가거라

먼 길 갈 때는 빈손이 좋다

텅 빈 자리 채우는 게 삶이다

한때는 짧아서 아름다운 법이란다.

 

할매 찌찌 - 김우전

 

할매 찌찌는 와 이래 쭈글쭈글한데

 

느그 아부지, 아지야, 고모들

목숨 만들어 멕이고 나니

이래 터엉

비었다 아이가

 

그럼 우리 아빠한테만이라도

내 나라 하마 되잖아

 

하마 준 걸 우에 다부로* 돌라카노

 

할매, 그래도 달라 해바라

아빠 나쁘다

할매 찌찌 다 뺏아 먹고

 

욕실 앞을 지나다 무심코 들은 나는

말뚝처럼 박혀

먹먹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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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파도 정순영

 

파도를 보아라

그냥 밀려와 하얗게 부서지는 그리움이 아니다

바위에 아린 한을 포효하고 있다

겸손하게

실패를 연습하면서

파도는 늙어서도 멍든 가슴에 밀려와 하얗게 부서지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송용구

 

하느님이

흙 속에 생기를 불어 넣어

아담을 지으셨듯

그분으로부터 지상에 파견된

예술의 사자使者

돌 속에 숨결을 불어 넣어

생명을 빚었다

 

돌 속에 닫혀 있던

삼천 년의 세월이

홍해의 물길처럼 열리더니

아담을 닮은 사내 하나

눈부신 나신裸身으로 걸어 나왔다

 

본질과 현상 - 호월

 

수학과 과학은 아름답다

인간이 만들어 낸

최고의 예술

객관적 진실이다

 

예로 지구상의 중력장 법칙 W=mg

간단한 수식으로

무게; W, 질량: m, 지구의 중력 가속도: g의 관계를 정립한다

우리는 무겁다는 현상에 주목하지만

질량이라는 본질은 느끼지 못한다

질량은 실체이고 무게는 현상이다

본질인 질량은 변하지 않지만

현상인 무게는 달에서는 1/6로 준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 아름다운 진리

환경에 따라 변하는 현상이

과연 진정한 진리일까?

 

꽃의 색깔은 현상이고

본질은 빛의 파장이 반사된 것

현상을 느끼고 아름답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닐까?

 

아름다움은 변치 않는 본질을 아는 데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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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 아름답다는 말은 안다는 말인가요?

 

머윗대 민구식

 

늦은 아침을 먹고

둘이 앉아

데친 머윗대 껍질을 까다가

정치를 까다가

못된 이웃을 벗기다가

나를 뒤집다가

온 세상 껍질을 다 까고 나서도

머윗대는 남았다

물에 담가뒀다가

고소한 양념에 버무려도

남아 있는 쌉싸름한 씹을 거리

 

괴산 장날 어물전에서 읽는 간 고등어의 순애보 - 조성례

 

저 자세는 너무 선정적이다

간 고등어 한 쌍이 뒤에서 뒤쪽을 깊이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아직도 몸에는 바다의 문양을 그려놓은 채

질퍽하게 따라 온 고향 꿈을 꾸는가보다

 

잠든 등 뒤에서 푸른 파도가 넘실거린다

여전히 등을 뒤덮는 파도소리에

왁자한 사람들의 흥정소리

다른 고기들의 목이 잘려나가는 칼질소리도 들리지 않는지

 

수만리 타향으로 강제이주 당하면서도

물살을 가르던 정분을 잊지 못해

가슴에 품고

혹한 속에서 더더욱 몸을 밀착 시킨다

 

싱싱합니다 싱싱해 상인의 말을 꿈속으로 끌어당기며

 

 

                                        * 월간 우리(202106월 통권396)에서

                                                            * 사진 : 찔레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