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물 꽃
눈물 없이 피는 꽃이
있기는 한 걸까
다랑쉬오름 중턱에
숨어 지낸 들꽃들
살아갈
터전을 잃어
핏물 왈칵 쏟아낸다
♧ 장미
요 며칠 울담 너머 내 등을 간지럽히더니
오늘은 옷고름 풀며 주섬주섬 다가오네
저 붉은 앙칼진 자태 이내 몸이 뜨겁네
♧ 접시꽃 2
목뼈가 굵은 사내 줄담배를 피워대고
때론 발목을 잡아 닭싸움도 해보면서
초여름 부산한 오후에
개폼 잡는
접
시
꽃
♧ 담쟁이 13
요 며칠 콧구멍이 맹맹하다 했더니
늦더위를 먹었나, 담쟁이가 코필 쏟네
골목길 애돌아가면서
불붙는 하늘도 보네
♧ 달팽이 1
느릿느릿 가는데 무슨 욕심 더 부리랴
집 한 채 있으면 그걸로 만족한데
축축한 봄날이 오면 느림보로 살고 싶다
♧ 단풍 1
느닷없는 습격에 속이 새카맣게 탄다
열병같이 번져온 옛사랑을 놓칠세라
절정에 불타고 있네, 여린 가슴 녹이네
♧ 돌하르방 4
누굴 그리 기다리나
파할 시간 넘었는데
동카름* 마실가신
내 아버지 발길 따라
오늘도
잔술에 취해
놀을 잡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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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름 : ‘동네’를 말하는 제주어.
* 강상돈 시집 『딱!』(한국의 단시조 031, 책만드는집, 2021.)에서
*맨 처음 꽃은 피뿌리풀, 돌하르방 사진은 삼성혈 정문의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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