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종호 시 '흔들림에 대하여' 외 4편

김창집 2021. 5. 24. 23:54

흔들림에 대하여 김종호

 

산다는 것은

순간에서 순간으로

끝없이 흔들리는 것

 

바람 부는

이러저러한 세상

더 얼마나 몸부림쳐야

강물처럼 유장하게 흐를 수 있나

 

벌새는 꿀 한 방울 얻으려고

1초에 99번의 날갯짓을 하고

꽃은 꽃이 되려고

그 겨울 땅 속에서 그렇게

얼어붙은 꿈을 밀어 올린다

 

순간에서 순간으로

얼마나 흔들려야 나무처럼

꿋꿋하게 서랴.

 

떠날 때는 2 김종호

 

떠날 때는 강물에 누워

소리 없이 흐를 일이다

 

소리쳐 불러도

강물은 뒤돌아보지 않고

한 시절 뜨겁게 달구더니

제비 빈 둥지가 덩그렇다

 

떠날 때는 달도 별도 없이

구름으로나 흐를 일이다

 

고물상에 널린 부서진 이야기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겠느냐

사는 것은 날마다 떠나는 일

눈물이 나면 휘파람이나 불며 가라

 

어느 사무친 날에

그리움도 오랜 친구이러니

달빛 서러운 네 창가에

술 한 잔 놓고 다정하리니

 

떠날 때는 강물에 누워

소리 없이 흐를 일이다.

 

나 그런 여자를 안다 - 김종호

 

보고 있으면 잠길 듯이 깊은

눈이 호수 같은 여자를 안다

막걸리를 벌컥벌컥 마시면서

나나무스꾸리의 물망초를 듣는

비쩍 바른 몸만 가진 여자

문학을 좋아한다며

시인들의 배설로 도배된 북새통,

60년대의 주막의 주인인 여자

문인들의 난삽한 잡설에 끼어

밤늦도록 자리를 뜨지 못하는 여자

사랑해서 불행했던 여인 카튜샤와

황량한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떠오르는

왠지 부축해줘야 될 것만 같은

버들잎 같은 그런 여자를 안다.

 

시간과 나

 

구름은 하늘에 그림자를 두지 않고

바람은 허공에 자국을 남기지 않네

 

꽃들은 보는 이 없이 아름답고

새들은 듣는 이 없이 즐겁다

 

보이지 않는 시간을 토막 내면서

무변한 수평선을 갈피 접으면서

스스로 배반하고

스스로 피를 흘리나

 

오늘도 초조하게 지는 해

지금 몇 시나 됐을까?’

삼백 년 소나무는 고개를 젓고

아예 문을 닫아걸고

바위는 저만 고요하네.

 

누가 울고 있나

 

바람은 떠나고

우우-

숲은 울었다

 

완도행 카페리는

꽃을 날리며 출항하고

와와-

가슴에 길을 내는

바다는 소리치며 울었다

 

수없이 오가는 사람들

어깨 스쳐가는 사람들……

길 떠나는

내가 서러운데

누가 뒤에서

모르게 울다 갔나

 

가는 데마다

비밀을 간직한 섬들이 있고

짙은 해무 속 섬 사이로

인어*의 노래는 손짓하는데

바다는 소리치며 부서지고

나는 또 나를 찾아 떠나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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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 : 로렐라이의 전설에 나오는, 라인 강변에서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을 홀려 난파시키는 요정.

 

 

                               *김종호 시집 날개(푸른 시인선 010, 푸른사상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