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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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중 시집 '2학년과 2학년 사이에' 발간

김창집 2021. 6. 10. 09:52

시인의 말

 

  제주에 있는 소규모 통합학교인 무릉초중학교가 자율학교로 지정되면서 공모를 거쳐 학교장으로 4(2015.32019.2) 동안 근무했다. 통칭 혁신학교로 불리는 학교에서 학교장으로 근무하면서 또 다른 시선으로 학생, 학부모, 교사들을 만나게 되었다.

 

  유치원 입학생부터 중학교 졸업생까지 자신의 개성을 발하는 아이들, 묵묵히 지켜보거나 적극 목소리를 내는 학부모님들 그리고 교육의 본질을 찾아나가려는 선생님들, 그 모두와의 만남은 매우 소중했다. 모든 만남은 마음에 결을 남긴다. 이 시집은 4년 동안 내 마음에 새겨진 수많은 결을 갈무리하는 조그만 기록이다.

 

  시집 말미 5부를 채우는 것은 학교 혁신 운동에 참여하면서 나의 가슴에 오래 자리했던 단어들(성찰, 자발성, 소통, 리더십, 헌신, 성장, 시스템, 열정 등)에 대한 생각을 짤막하게 표현한, 시로 완성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나의 고민이 잘 드러나는 단상斷想들이다.

 

멀구슬 열매

 

1030분에

학부모님이 억울하다며, 피해자라며 찾아왔다

12시 넘게 이야기했다

점심은 귀로 들어가고 입으로 나왔다

1310분에 담임선생님과

1420분에는 학교폭력 업무 선생님들과 이야기했다

1520분에 상대방 학부모님과 면담을 했다

1610분에 전체 선생님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었다

퇴근 시간은 오래 전에 지났다

 

학교를 나서는데

정문에 서 있는 멀구슬나무,

오늘 오고간 수없는 말들이

거기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다

 

도전

 

학생 사안이 발생했습니다

처벌로 자신을 돌아보게 할 것인지

대화 서클로 자신을 돌아보게 할 건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입니다

 

한 선생님이 대화 서클로

관계를 회복시켜보자고 먼저 말합니다

 

또 한 선생님이 말합니다

그런다고 관계 회복이 가능할까요

더 이상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현실적인 해결책이 아닐까요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가다가

어느 순간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대화 서클은 손쉬운 선택이 아니고

처벌도 손쉬운 선택이 아니어서

어떤 방향이든 목표는 회복이어야 하고

궁극의 목표인 회복을 위해

어려운 것은 당장의 행동입니다

 

교육은 도전이고

도전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2학년과 2학년 사이에

 

초등학교 2학년 경민이와 헌수가

통학 버스 타러 가면서

추석 잘 보내세요

꾸벅 인사하며 즐겁습니다

 

중학교 2학년 두 친구가

폭력 사안으로 학생부 선생님에게

면담하러 가면서

얼굴이 시무룩합니다

 

2학년과 2학년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가요

 

아이들에게

 

자존감은 자존심과 다르단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에 대하여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고

그리하여

갈등이 생길 때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고

그리하여

진짜로 자존심을 잘 지킬 줄 아는 사람이란다

그래서

자존감 없이 자존심만 높은 사람은

한 번 상처를 받으면 쉽게 회복하지 못한단다

 

왜냐하면

자존심은 결과를 중요시하지만

자존감은 과정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란다

 

축구 좋아하는 아이

 

우리 학교

축구 좋아하는 아이가

노선 버스를 탑니다

통학 버스를 이용하는 것보다

버스비는 들지만

30분 이상 빨리

학교에 도착하게 됩니다

 

일찍 가면

같이 축구할 아이가 없지만

빈 골대를 벗 삼아

킥 연습을 할 것이라고 합니다

 

 

                                     * 김규중 시집 2학년과 2학년 사이에(작은숲, 2021)에서

                                                          * 사진 : 멀구슬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