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항신 시 '소확행' 외 5편

김창집 2021. 7. 21. 00:23

소확행

 

아침 늦은 시간만큼 뒤척이다

부엌으로 가는 그녀

 

하루 일과처럼

밴드에게 인사하고

눈에 약물 넣고

칼슘 찾아 먹고

방긋 웃어주는 노란 초

거실에 동거하는 안슈리움 제라늄 행운목

마음 담아내는 요리를 하며

무엇을 어떤 맛으로 만들어 볼까 궁리하며

그래 이 순간

내가 설 수 있어 행복하고

만질 수 있어 행복하고

만들 수 있어 행복한 실세實勢가 아닐까

그냥 행복이라 하자

 

서흘포에 바람이 분다

 

물이 뒤척일 때마다 짠내음 털어내던

서흘포 마을에 싹쓸 바람이 블었다

 

소 떼 지나는 광장 들어서면

바다와 모래 동산이 마주 보는 섬

주낙 가는 아들 바라보며 서 있던

어머니 자리

 

밭일 가던 어미 쫓은 세 살배기 어린 것은

먹장구름 옴팡마을 휘감던 칠월 태풍이 쏟아지던 날

아이는 모래섬 따라 삼만 리를 돌다 왔을

어미는 바다로 간 어부 안이(安易)가 궁금했을

 

증손자 풀 장삼 덮어 잠재우던 골육의 정은

사라호도 어쩌지 못한 하늘의 천명이었으리

 

아이콘택트

   -기적이라는 간절함으로

 

시간을 잃어가는 남자와

기억을 잃어가는 여자

마지막 웃음과 눈물의 한 줄기 빛에

그 작업에 물들다

 

무언의 빛은 간절함으로 다가서고

<지금 이 순간>* 막이 오르기도 전에

뇌종양이라는 친구와 투병하며 할머니와 함께 가는

인간극장 파노라마

아들도 없이 엄마도 없이 굴곡진 삶은

오직

다만

기적이라는 간절함으로 바라봐야 하는

 

너와 나처럼

 

지금 이 순간

모노드라마 속에 안무를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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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애월, 결이 곱다

 

파도는 부드러운 혀를 가졌으나

거친 절벽을 만든* 신엄의 오르막길

 

오고 가다 미련 버리지 못해 서성인다

 

올려다 웃음 짓는 알작지 눈 마중은

시간과 공간 넘나들다 아이들 눈 마중되고

제주어 배와 보게마씀

파도는

밀려왔다 자그락자그락 말을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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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정군칠 시인의 달의 난간- p.44. 첫줄 차용

 

라면의 힘보다 더 외로운 환희

   -만학도의 길

 

영실에서 윗세오름 따라

라면의 힘 믿고 걷고 걸었다

후루룩 후-우 후-우 쩝

사발면 참 맵다

 

학사논문 써보고 나도 시인되겠다며

정지용 님 발자욱에

눈물의 환희 찍어본다

 

하늘과 바람과 빛, 그리고

 

오늘, 모처럼, 원하던,

진정한 가을 하늘아래

 

노랑, 하양, 잿빛들인

나비의 향연과

노랑, 보라, 주황의 꽃에

내가 물들다

 

얼마나 오랜만일까

정녕 못 보고 떠날 번했던

순간과 시간과 날

 

                 * 김항신 시집 라면의 힘보다 더 외로운 환희(도서출판실천, 202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