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분의 1
소주 냄새 곱창 냄새 연기 자욱한 선술집
반쯤 풀린 눈으로 시선을 맞추다 자정 지나 인원대로 나뉘는 정밀 분할 지친 하루의 저 군상들 대리운전 불러놓고 내일은 또 어디에서 n이 되어 살아갈까? 어느 누가 독박으로 질서를 파괴하는 외다리를 겁도 없이 건너갈 것인가? 1년도 1/365씩 똑 같이 하루하루 나누어져 취해가는 거지 n분의 1이면 정말로 거친 이 땅도 동등하게 될까? 새벽녘 막노동 나가는 늙은 노동자의 병든 등뼈가 1자로 반듯하게 서지 못한다 나눠먹기 즐기는 n이 먼저인지 1이 먼저인지 더하기보다 나누기를 잘하고 볼 일이다
오늘 밤 혼밥족들은 n분의 1도 할 수 없다
♧ 운 좋은 날
천장 보고 누워 있어
두려운
압정이 있다
발에 찔릴까 멈칫하다
접질린
사람이 있다
일순간
똥 피하다 겨 밟은
운 좋은
날이 있다
♧ 낯의 방정식
두꺼워질 때도 있고
설 때도 있다더니
나 때문에 주름진 당신
당신 때문에
펴진 나
괜스레 낯간지럽다
화끈거려
죽겠다
♧ 와이퍼
흔적을
지우던 널
이제 내가 지워야겠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빠르게 두 번
느리게 세 번
지우면
더 선명해지는
내 앞에
서 있는 너
♧ 문콕
콕, 찌르고 고개 돌리면
누가 정말 모를까 봐
바짝 붙은 내 잘못이든
속마음 연 당신 탓이든
하여간 옆구리 찔렀으면
뭐라도 하지, 나 원 참
♧ 허리띠
이제, 낡고 해졌다고
쉽사리 버릴 순 없어
는적는적 볼품없이
흘러내리던 나를
한사코
깍지 낀 채로
붙들어준 너였잖아
*조한일 시집 『나를 서성이다』(시와실천, 2021)에서
*사진 : 타이티에서 파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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