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류시화 엮음 '잠언 시집'의 시(4)

김창집 2021. 9. 10. 00:10

잠 못 이루는 사람들 - 로렌스 티르노

 

새벽 두 시, 세 시, 또는 네 시가 넘도록

잠 못 이루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집을 나와 공원으로 간다면,

만일 백 명, 천 명, 또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하나의 물결처럼 공원에 모여

각자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예를 들어 잠자다가 죽을까봐 잠들지 못하는 노인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와

따로 연애하는 남편

성적이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는 자식과

생활비가 걱정되는 아버지

사업에 문제가 있는 남자와

사랑에 운이 없는 여자

육체적인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과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사람……

만일 그들 모두가 하나의 물결처럼

자신들의 집을 나온다면,

달빛이 그들의 발길을 비추고

그래서 그들이 공원에 모여

각자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그렇게 되면

인류는 더 살기 힘들어질까.

세상은 더 아름다운 곳이 될까.

사람들은 더 멋진 삶을 살게 될까.

아니면 더 외로워질까.

난 당신에게 묻고 싶다.

만일 그들 모두가 공원으로 와서

각자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태양이 다른 날보다 더 찬란해 보일까.

또 나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그러면 그들이 서로를 껴안을까.

 

나는 세상을 바라본다 루돌프 슈타이너

 

나는 세상을 바라본다

그 안에 태양이 비치고 있고

그 안에는 별들이 빛나며

그 안에는 돌들이 놓여져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식물들이 생기 있게 자라고 있고

동물들이 사이좋게 노닐고 있고

바로 그 안에

인간이 생명을 갖고 살고 있다.

 

나는 영혼을 바라본다.

그 안에는 신의 정신이 빛나고 있다

그것은 태양과 영혼의 빛 속에서,

세상 공간에서,

저기 저 바깥에도

그리고 영혼 깊은 곳 내부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그 신의 정신에게

나를 향할 수 있기를.

공부하고 일할 수 있는 힘과 축복이

나의 깊은 내부에서 자라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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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발도르프 학교에서 아침 수업 시작 전에 학생들이 함께 읊는 시.

 

무덤들 사이를 거닐며 - 임옥당

 

무덤들 사이를 거닐면서

하나씩 묘비명을 읽어 본다.

한두 구절이지만

주의 깊게 읽으면 많은 얘기가 숨어 있다.

 

그들의 염려한 것이나

투쟁한 것이나 성취한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태어난 날과

죽은 날짜로 줄어들었다.

살아 있을 적에는

지위나 재물이 그들을 갈라놓았어도

죽고 나니

이곳에 나란히 누워 있다.

 

죽은 자들이 나의 참된 스승이다.

그들은 영원한 침묵으로 나를 가르친다.

죽음을 통해 더욱 생생해진 그들의 존재가

내 마음을 씻어준다.

 

홀연히 나는

내 목숨이 어느 순간에 끝날 것을 본다.

내가 죽음과 그렇게 가까운 것을 보는 순간

즉시로 나는 내 생 안에서 자유로워진다.

남하고 다투거나 그들을 비평할 필요가 무엇인가.

 

사랑은 - 오스카 햄머스타인

 

종은 누가 그걸 울리기 전에는

종이 아니다.

 

노래는 누가 그걸 부르기 전에는

노래가 아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도

한쪽으로 치워놓아선 안 된다.

사랑은 주기 전에는

사랑이 아니니까.

 

내가 원하는 것 자디아 에쿤타요

 

내가 원하는 것은 함께 잠을 잘 사람

내 발을 따뜻하게 해주고

내가 살아있음을 알게 해줄 사람

내가 읽어주는 시와 짧은 글들을 들어 줄 사람

내 숨결을 냄새 맡고, 내게 얘기해 줄 사람

 

내가 원하는 것은 함께 잠을 잘 사람

나를 두 팔로 껴안고 이불을 잡아당겨 줄 사람

등을 문질러 주고 얼굴에 입맞춰 줄 사람

잘 자라는 인사와 잘 잤느냐는 인사를 나눌 사람

아침에 내 꿈에 대해 묻고

자신의 꿈에 대해 말해 줄 사람

내 이마를 만지고 내 다리를 휘감아 줄 사람

편안한 잠 끝에 나를 깨워줄 사람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사람

 

 

                      *류시화 엮음 잠언 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열림원, 1998)에서

                                                             *사진 : 덩굴용담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