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산림문학' 2021년 가을호의 시 (1)

김창집 2021. 10. 3. 00:03

숲에 서서 - 김귀녀

 

들길을 걷다가

산길을 걷다가

풀잎이 무성한 갈대 숲 속에서

풀잎의 말들을 듣고 싶어

수런대는 소리를 듣고 싶어

무슨 말인지는 그들의 방언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내 마음이 편안해진다

거짓도 비아냥거림도 없는 진솔함

우리가 모르는 작은 이슬도

기억할 것 같고

풀벌레 울음소리도 기억할 것 같고

갈대 숲 새들의 지저귐도

나무들의 외침도

들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난 숲에 서서 저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삶의 이치를

생각해본다

 

주산지 왕버들 嘉松 김기채

 

호수 위에 산이 있고

산 위에 구름이 외롭다

 

구름 사이로 월광이

달 그림을 그리며

 

호수를 먹고 자란

왕버들 30여 그루가

상수지천명을 자랑한다

 

태고의 아픔을 너는 아는가?

너의 기세가 너무도 당당하구나!

 

물에 잠긴 왕버들

지저귀는 새소리

하늘에 떠 있는 달과 별

 

기암에 부딪히는 바람소리가

주왕의 가을을 연다.

 

모과향기 - 김내식

 

빛깔도 모양도 울퉁불퉁

제 멋대로 생긴 모과를 그린 작품

제목을 보니 가을향기라 하네

그렇다, 정말

모과는 못생겨야 멋이라고

위안을 삼고 사는 나도

우리네 중년의 인생살이도

생긴 대로, 있는 대로

그냥 그대로

사는 것이 제 멋이고

세상의 쓴맛 단맛 가리지 않고

안으로 갈무리하여

가을바람에 실어 보내는

인품의 속내 깊은 그 향기가

진실임을 외치며

작가의 혼이 그림에서

걸어 나온다

 

폐광촌역 설권우

 

  빈 옥수수 밭둑에서 웅성대던 흰구름이 밀린다 옆구리가 터진 채 퍼질러 앉은 산마루가 밀린다 바람한테 멱살 잡힌 미루나무가 밀린다 노을이 투신한 핏빛 강물이 밀린다 외길로만 내닫는 코 꿰인 전동차가 밀린다 통기타 소리 들썩거리는 모래톱이 밀린다 레일바이크 굴리는 티눈박인 발바닥이 밀린다 눈동자를 찔러대는 처진 속눈썹이 밀린다

 

가창오리 떼 이명

 

천수만 하늘은 바다다

하늘 가득 물결이 밀려온다

북쪽에서부터 질서정연하게 밀려오던 물결은

천수만 하늘에서 부서져 노을파도가 된다

붉게 채색된 한 폭의 풍경화

어둠이 내리면 어둠 속에서

물결은 그리움처럼 낱낱이 뭍으로 내려오고

자석마냥 나를 흡입해 간다

혹한은 더욱 멀고 아득한 것이어서

물결은 시베리아로부터 흘러 들어오는 것인데

물결 되어 떠난 사람 물결 따라 돌아오고

짙어가는 어둠 속에서

나는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다

하늘도 바다라서 저녁에는 붉어지고

나는 물결을 타고 자작나무 숲으로 떠난

한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 바다에서

나는 물결이 되고 어둠이 되는 것이다

 

 

                                        *계간 산림문학2021년 가을호(통권 4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