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컨
1.
안면에 레프트를 툭 툭 툭! 던지라구
가드가 오르는 순간, 갈비를 찍으란 말야
악물어, 이길 생각 마라, 죽일 작정 하라니까
2.
얌마, 그걸 놓쳐, 코너에 다 몰아놓고
눈이 잘 안 보여요, 한쪽도 안 보니야
벼르고 벼르던 경기잖아, 포기 할래, 여기서.
3.
암만해도 모자란다 KO 외엔 방법 없어
관장님, 그게 어디 아가씨 이름입니까?
너 아직, 제 정신이구나 라스트야, 나가라!
♧ 수건
1
“가드 올려, 어깨 힘 빼, 악물고 눈 치켜 떠,
잽, 잽, 원투 원투 원투! 훅 어퍽, 빨리, 빨리 임마,
딱 딱 딱, 끊어치라구 그래, 다시, 치고 빠져!”
해도 해도 들녘이여 겹겹의 물안개여
샌드백 장갑을 낀다 한바탕 샤도복싱 한다
무시로 사범님 그 목소리, 채근하는 전의戰意를
벼르고 벼르던 경기 속절없이 무너지듯
시정市井의 링 바닥에 처절히 나뒹굴 때
몇 번을 던지고 싶었는가, 피 땀 절인 그 수건
2
끝내 항서降書 없이 예까지 예까질 왔어
선수랴 관장이랴 어설픈 내 노래랴
그리움 아직도 먼 데, 어디인가? 여기는
♧ 어느 링사이드
한창 몸 풀던 녀석 출전시간 다가오자
“관장님, 떨립니다” 얌마, 장사 한두 번 하냐
그딴 건 몇 대 터지면 돼, 경기는 이미 시작됐어
복싱은 근성이야, 죽기살기 근성이라구
원투, 원투 원투! 다시, 원투 원투 원투!
초장에 혼을 빼버려, 악물랬지, 치켜떠
한 인연 그리움의 간절한 링사이드에서
기회마다 미적미적 아, 나는 떨고 있나
몸 한 번 던지지 못하고… 그냥 그 입만 살아
♧ 첫 출전
너만 그런 게 아냐 녀석도 그렇다니까
어떤 강심장도 첫 출전 땐 파르르 떨지
그게 곧 경기 시작이라구, 예서 밀리면 안 돼
녀석은 아웃복서야 거리를 주지마라
한 스텝 빠지면 두 스텝 따라붙어
알겠지, 인파이팅이다, 숨 돌릴 틈 없이 몰아쳐
관장님, 어젯밤에 한잠도 못 잤어요
다 그런 거랬지, 얼른 떨쳐버려
그 몰골 녀석에 힘이 돼, 자~ 원투, 원투 원투!
♧ 성호 긋고
염열炎熱 삼십오도… 할 일은 해야 한다
소독복 꽉 껴입고 육묘장 들어서면
나는 또 권투선수다, 성호 긋고 링에 오른
무제한급 파이터의 이글거리는 눈빛 앞에
“주눅 들면 안 된다”며 “밀리면 결코 안 된다“며
잠자리
몇 띄워놓고
브이v자 손짓 아, 가을
♧ 혼잣말
잊었니? 피투성이로 링 바닥에 나뒹굴 때
몽롱한 의식에도 귀청 울리던 그 환호성
세상이 다 그런 거랬지, 사랑처럼 그런 거
그 정글 상대마다 만만한 이 없었듯
삶인들 만만할까 해도 해도 숨 막힐 땐
간신히 커버링으로 버티던 순간 잊지 마
물, 물, 물 한 모금이 기도보다 간절했던
시합 전 체중조절의 그 목마름도 새겼으면
소소한 사연들이사, 아예 입을 다물어
* 강문신 시조집 『해동解冬의 들녘』 (문학과 사람, 2021)에서
* 사진 : 결실의 계절(사철나무 열매)
'문학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시조' 2021 제30호 펴내 (0) | 2021.10.31 |
---|---|
이대흠 시집 '귀가 서럽다'의 시(5) (0) | 2021.10.30 |
김병택 시집 '벌목장에서'의 시(2) (0) | 2021.10.28 |
'제주문학' 2021년 가을호의 시조(1) (0) | 2021.10.27 |
임채우 시집 '설문雪門'의 시(2) (0) | 2021.1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