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강문신 시조집 '해동의 들녘'에서(4)

김창집 2021. 10. 29. 18:46

세컨

 

1.

 

안면에 레프트를 툭 툭 툭! 던지라구

가드가 오르는 순간, 갈비를 찍으란 말야

악물어, 이길 생각 마라, 죽일 작정 하라니까

 

2.

 

얌마, 그걸 놓쳐, 코너에 다 몰아놓고

눈이 잘 안 보여요, 한쪽도 안 보니야

벼르고 벼르던 경기잖아, 포기 할래, 여기서.

 

3.

 

암만해도 모자란다 KO 외엔 방법 없어

관장님, 그게 어디 아가씨 이름입니까?

너 아직, 제 정신이구나 라스트야, 나가라!

 

수건

 

1

 

가드 올려, 어깨 힘 빼, 악물고 눈 치켜 떠,

, , 원투 원투 원투! 훅 어퍽, 빨리, 빨리 임마,

딱 딱 딱, 끊어치라구 그래, 다시, 치고 빠져!”

 

해도 해도 들녘이여 겹겹의 물안개여

샌드백 장갑을 낀다 한바탕 샤도복싱 한다

무시로 사범님 그 목소리, 채근하는 전의戰意

 

벼르고 벼르던 경기 속절없이 무너지듯

시정市井의 링 바닥에 처절히 나뒹굴 때

몇 번을 던지고 싶었는가, 피 땀 절인 그 수건

 

2

 

끝내 항서降書 없이 예까지 예까질 왔어

선수랴 관장이랴 어설픈 내 노래랴

그리움 아직도 먼 데, 어디인가? 여기는

 

어느 링사이드

 

한창 몸 풀던 녀석 출전시간 다가오자

관장님, 떨립니다얌마, 장사 한두 번 하냐

그딴 건 몇 대 터지면 돼, 경기는 이미 시작됐어

 

복싱은 근성이야, 죽기살기 근성이라구

원투, 원투 원투! 다시, 원투 원투 원투!

초장에 혼을 빼버려, 악물랬지, 치켜떠

 

한 인연 그리움의 간절한 링사이드에서

기회마다 미적미적 아, 나는 떨고 있나

몸 한 번 던지지 못하고그냥 그 입만 살아

 

첫 출전

 

너만 그런 게 아냐 녀석도 그렇다니까

어떤 강심장도 첫 출전 땐 파르르 떨지

그게 곧 경기 시작이라구, 예서 밀리면 안 돼

 

녀석은 아웃복서야 거리를 주지마라

한 스텝 빠지면 두 스텝 따라붙어

알겠지, 인파이팅이다, 숨 돌릴 틈 없이 몰아쳐

 

관장님, 어젯밤에 한잠도 못 잤어요

다 그런 거랬지, 얼른 떨쳐버려

그 몰골 녀석에 힘이 돼, ~ 원투, 원투 원투!

 

성호 긋고

 

염열炎熱 삼십오도할 일은 해야 한다

소독복 꽉 껴입고 육묘장 들어서면

나는 또 권투선수다, 성호 긋고 링에 오른

 

무제한급 파이터의 이글거리는 눈빛 앞에

주눅 들면 안 된다밀리면 결코 안 된다

잠자리

몇 띄워놓고

브이v자 손짓 아, 가을

 

혼잣말

 

잊었니? 피투성이로 링 바닥에 나뒹굴 때

몽롱한 의식에도 귀청 울리던 그 환호성

세상이 다 그런 거랬지, 사랑처럼 그런 거

 

그 정글 상대마다 만만한 이 없었듯

삶인들 만만할까 해도 해도 숨 막힐 땐

간신히 커버링으로 버티던 순간 잊지 마

 

, , 물 한 모금이 기도보다 간절했던

시합 전 체중조절의 그 목마름도 새겼으면

소소한 사연들이사, 아예 입을 다물어

 

 

                              * 강문신 시조집 해동解冬의 들녘(문학과 사람, 2021)에서

                                           * 사진 : 결실의 계절(사철나무 열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