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소감 - 고성기
화려한 조명보다
더 빛난 소감 한마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줍게 받고나선
대본이
성경이라는
윤여정의 영화 인생
최고보다 최중이
내 삶의 목표라고
사전에 없는 말이 이토록 감동일까
시조도
이처럼 쓰면
비움의 실천인 걸
♧ 그림자 산책 - 김진숙
밤은 왜 낮은 쪽으로 등을 서로 기대는지
속내를 길게 드리운 야자나무 지나서
갈대숲 새들의 언어 외국어로 듣다가
울음이 울음을 덮고 어둠이 어둠을 덮고
갯바위 언저리마다 찬물에 부리를 씻는
저들의 문장 한 줄을 받아쓰지 못한 밤
♧ 삶의 한 방식 - 김윤숙
정직만이 삶의 방식 그리 쉽지 않았으리
한 소절 마디마디 결구를 다지며
텅 빈 속 채우려했던 엇나가는 곁가지
수런거리는 댓잎파리 바람의 말 흘리나
반짝이는 그림자 둘 곳 없는 상념에
한뎃잠 깊이 내리니, 뿌리마저 허공이네
♧ 저승 내비게이션 – 김영란
갔던 길 돌아올 때 늘 길을 잃은 그녀
한 세상이 열리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고 언제나 여행자처럼 낯설고도 설레지만 길치의 긍정 마인드 아무도 못 말려 저승길은 어찌 가나 걱정하는 소리에
최신형 내비게이션 장착하고 갈 거라네
♧ 물외 냉국 – 오영호
조밭에
검질* 매다
해가 중천中天이면
멀구슬나무 그늘 아래 어머니와 모여 앉아 된장 푼 물에 물외**를 숟가락으로 듬성듬성 잘라 넣은 냉국에 보리밥 한 덩어리 조망*** 푹 뜬 숟가락에 마농지**** 찢어 올려놓고 꿀꺽 삼키고 나면
더위도
괴로움도 잊고
가난마저 날아갔다
---
*김(잡초) **조선오이 ***말아 ****풋마늘 장아찌
♧ 민달팽이 – 이애자
전생이 어떻기에 천형의 길일까
무수히 더딘 걸음 겨냥할 햇살 피해
동새벽 맨몸이 기어간 맨땅은 맨 은사슬
♧ 달그락, 봄 - 장영춘
기다린 당신의 봄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겨울 골목길에 발소리도 낮추며
살아서 돌아오리라 등 떠밀던 아버지
발목 빠진 계절 앞에
당신은 오지 않고
무작정 찾아든 숲, 생과 사 경계에서
풀뿌리 근성으로 견딘 발자국이 뜨겁다
꽁꽁 언 낮과 밤
봉인된 시간 속에
달그락 숟가락 소리, 얼음장 녹는 소리
드디어 재회를 꿈꾸는 얼음새꽃 떨리는 손
♧ 와인글라스 - 한희정
혼수로 끼워 놓은 와인 잔 한 세트
필수였나 덤이었나 표정 없이 따라 와
이유도
물은 적 없이
긴긴날이 공허했을
손끝에 입술 끝에 삼십년을 고백했네
약속을 은닉한 죄 차갑게 추궁할 뿐
놀빛에
붉어진 얼굴
더는 묻지 않았네
* 제주시조시인협회 『제주시조』 2021 제30호에서
* 사진 : 더덕 꽃
'문학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경훈 시집 '수선화 밭에서' 발간 (0) | 2021.11.02 |
---|---|
월간 '우리詩' 2021년 11월호의 시(1) (0) | 2021.11.01 |
이대흠 시집 '귀가 서럽다'의 시(5) (0) | 2021.10.30 |
강문신 시조집 '해동의 들녘'에서(4) (0) | 2021.10.29 |
김병택 시집 '벌목장에서'의 시(2) (0) | 2021.10.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