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제주시조' 2021 제30호 펴내

김창집 2021. 10. 31. 00:25

어떤 소감 - 고성기

 

화려한 조명보다

더 빛난 소감 한마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줍게 받고나선

대본이

성경이라는

윤여정의 영화 인생

 

최고보다 최중이

내 삶의 목표라고

사전에 없는 말이 이토록 감동일까

시조도

이처럼 쓰면

비움의 실천인 걸

 

그림자 산책 - 김진숙

 

밤은 왜 낮은 쪽으로 등을 서로 기대는지

 

속내를 길게 드리운 야자나무 지나서

 

갈대숲 새들의 언어 외국어로 듣다가

 

울음이 울음을 덮고 어둠이 어둠을 덮고

 

갯바위 언저리마다 찬물에 부리를 씻는

 

저들의 문장 한 줄을 받아쓰지 못한 밤

 

삶의 한 방식 - 김윤숙

   

정직만이 삶의 방식 그리 쉽지 않았으리

 

한 소절 마디마디 결구를 다지며

 

텅 빈 속 채우려했던 엇나가는 곁가지

 

수런거리는 댓잎파리 바람의 말 흘리나

 

반짝이는 그림자 둘 곳 없는 상념에

 

한뎃잠 깊이 내리니, 뿌리마저 허공이네

 

저승 내비게이션 김영란

 

  갔던 길 돌아올 때 늘 길을 잃은 그녀

 

  한 세상이 열리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고 언제나 여행자처럼 낯설고도 설레지만 길치의 긍정 마인드 아무도 못 말려 저승길은 어찌 가나 걱정하는 소리에

 

  최신형 내비게이션 장착하고 갈 거라네

 

물외 냉국 오영호

 

  조밭에

  검질* 매다

  해가 중천中天이면

 

  멀구슬나무 그늘 아래 어머니와 모여 앉아 된장 푼 물에 물외**를 숟가락으로 듬성듬성 잘라 넣은 냉국에 보리밥 한 덩어리 조망*** 푹 뜬 숟가락에 마농지**** 찢어 올려놓고 꿀꺽 삼키고 나면

 

  더위도

  괴로움도 잊고

  가난마저 날아갔다

 

---

*(잡초) **조선오이 ***말아 ****풋마늘 장아찌

 

민달팽이 이애자

 

전생이 어떻기에 천형의 길일까

 

무수히 더딘 걸음 겨냥할 햇살 피해

 

동새벽 맨몸이 기어간 맨땅은 맨 은사슬

 

달그락, - 장영춘

 

기다린 당신의 봄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겨울 골목길에 발소리도 낮추며

살아서 돌아오리라 등 떠밀던 아버지

 

발목 빠진 계절 앞에

당신은 오지 않고

 

무작정 찾아든 숲, 생과 사 경계에서

풀뿌리 근성으로 견딘 발자국이 뜨겁다

 

꽁꽁 언 낮과 밤

봉인된 시간 속에

 

달그락 숟가락 소리, 얼음장 녹는 소리

드디어 재회를 꿈꾸는 얼음새꽃 떨리는 손

 

와인글라스 - 한희정

 

혼수로 끼워 놓은 와인 잔 한 세트

 

필수였나 덤이었나 표정 없이 따라 와

 

이유도

물은 적 없이

긴긴날이 공허했을

 

손끝에 입술 끝에 삼십년을 고백했네

 

약속을 은닉한 죄 차갑게 추궁할 뿐

 

놀빛에

붉어진 얼굴

더는 묻지 않았네

 

 

                                          * 제주시조시인협회 제주시조2021 30호에서

                                                             * 사진 : 더덕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