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임채우 시집 '설문雪門'의 시(3)

김창집 2021. 11. 3. 00:27

직소폭포

 

내 안의 폭포를 찾아서

천길만길 수직 낙하

소리꾼들이 피 토하던

물벽 하나 만나러

 

폭포는 심산유곡에 거하여

산길에는 바람꽃이 피고

계곡물 소리 발길을 붙잡고

단풍은 황홀하기 그지없다

 

우레와 비말의 폭포

천지는 먹먹하고, 고요하다

바람만이 종횡으로 허옇게

허옇게 말라버린 폭포

 

내 안에는 우레와도같이

여전히 물 떨어지는 소리

 

이명

 

변화에 둔감한 나를 두고 혹자는

자아가 강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길목

언제부턴가 내 안에 둥지 튼

열무김치 먹고 여름내 여물어 간다는 여치와

귀밑에 대침 박아 막장 내던 매미와

골똘하게 귀 뚫린 귀뚜라미가

밖이 울면 안도 울고

안이 울면 밖도 운다

 

달개비꽃

 

담장 아래 피고 지고

감청빛 바이칼 호수

 

새끼손톱보다 자잘한 것이

사당패 가시내 눈꺼풀 같은 것이

 

아침이면 서늘하게 피었다

저물녘 문을 닫는다

 

삼척

    - 강동수 시인에게

 

  잔잔하게 일렁이는 내항에는 고기잡이배들이 한들거리고, 외항에는 철선 한 척이 그림같이 떠 있다. 빨간 등대가 저만큼 외따로 서 있고, 밤이면 부두를 비추는 조명이 환상적으로 어른거린다. 고향을 등지지 못한 사람들, 옹기종기 바람 부는 벼랑 끝에 바다제비처럼 집 짓고 드나들며 시 쓰고 노래하며 몸짓으로 남아 있는 삼척, 태풍이 남쪽에서 왜구처럼 몰려오고 목선 한 척이 북에서 찾아 왔노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새가 깃들이지 않은, 몽당귀신 같은 가로수들이 몇 줌 모발로 나부끼고 있었다.

 

끔찍하다

 

사는 게 제각각인 듯해도

아파트 1층에서 꼭대기까지 비슷비슷하여

텔레비전 앞 거실 소파

층층이 안방 침대

문득, 포개자는 걸 생각하면

 

한길 스치는 사람들 제각각인 듯해도

나름대로 착각덩어리

너나없이 모순덩이리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 볼일 마치면

돌아보지도 않고 영안실행이라니

 

일모도원日暮途遠

 

해는 서산에 뉘엿뉘엿 떨어지고

삿갓 쓰고 지팡이 짚은 한 나그네가

긴 그림자 드리우며 허위허위 길을 잡는다

 

한 해가 저물도록 코로나는 잡히지 않고

거리두기는 강화되고 확진자는 늘어나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살길이 막막하다

 

나이를 또 한 살 먹어 가는데

총기는 흐려지고 집중력은 떨어지고

이루어 놓은 것은 없고 앞길이 막막하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그리 절망적이지 않으니

아직은 내일이 있다는 게 그래도 희망적이고

일모의 풍광이 얼마나 아름답게 빛날 것인가

 

 

                                      * 임채우 시집 설문雪門(우리, 2021)에서

                                                        * 사진 : 금목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