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소폭포
내 안의 폭포를 찾아서
천길만길 수직 낙하
소리꾼들이 피 토하던
물벽 하나 만나러
폭포는 심산유곡에 거하여
산길에는 바람꽃이 피고
계곡물 소리 발길을 붙잡고
단풍은 황홀하기 그지없다
우레와 비말의 폭포
천지는 먹먹하고, 고요하다
바람만이 종횡으로 허옇게
허옇게 말라버린 폭포
내 안에는 우레와도같이
여전히 물 떨어지는 소리
♧ 이명
변화에 둔감한 나를 두고 혹자는
자아가 강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길목
언제부턴가 내 안에 둥지 튼
열무김치 먹고 여름내 여물어 간다는 여치와
귀밑에 대침 박아 막장 내던 매미와
골똘하게 귀 뚫린 귀뚜라미가
밖이 울면 안도 울고
안이 울면 밖도 운다
♧ 달개비꽃
담장 아래 피고 지고
감청빛 바이칼 호수
새끼손톱보다 자잘한 것이
사당패 가시내 눈꺼풀 같은 것이
아침이면 서늘하게 피었다
저물녘 문을 닫는다
♧ 삼척
- 강동수 시인에게
잔잔하게 일렁이는 내항에는 고기잡이배들이 한들거리고, 외항에는 철선 한 척이 그림같이 떠 있다. 빨간 등대가 저만큼 외따로 서 있고, 밤이면 부두를 비추는 조명이 환상적으로 어른거린다. 고향을 등지지 못한 사람들, 옹기종기 바람 부는 벼랑 끝에 바다제비처럼 집 짓고 드나들며 시 쓰고 노래하며 몸짓으로 남아 있는 삼척, 태풍이 남쪽에서 왜구처럼 몰려오고 목선 한 척이 북에서 찾아 왔노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새가 깃들이지 않은, 몽당귀신 같은 가로수들이 몇 줌 모발로 나부끼고 있었다.
♧ 끔찍하다
사는 게 제각각인 듯해도
아파트 1층에서 꼭대기까지 비슷비슷하여
텔레비전 앞 거실 소파
층층이 안방 침대
문득, 포개자는 걸 생각하면
한길 스치는 사람들 제각각인 듯해도
나름대로 착각덩어리
너나없이 모순덩이리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 볼일 마치면
돌아보지도 않고 영안실행이라니
♧ 일모도원日暮途遠
해는 서산에 뉘엿뉘엿 떨어지고
삿갓 쓰고 지팡이 짚은 한 나그네가
긴 그림자 드리우며 허위허위 길을 잡는다
한 해가 저물도록 코로나는 잡히지 않고
거리두기는 강화되고 확진자는 늘어나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살길이 막막하다
나이를 또 한 살 먹어 가는데
총기는 흐려지고 집중력은 떨어지고
이루어 놓은 것은 없고 앞길이 막막하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그리 절망적이지 않으니
아직은 내일이 있다는 게 그래도 희망적이고
일모의 풍광이 얼마나 아름답게 빛날 것인가
* 임채우 시집 『설문雪門』 (우리詩움, 2021)에서
* 사진 : 금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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