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월간 '우리詩' 2021년 12월 402호의 시(1)

김창집 2021. 12. 4. 00:13

이런 시 김석규

 

시의 공화국에는

대통령도 장관도 없고

도지사도 시장 군수도 없고

경찰도 검찰도 법원도 없다

모두가 없고 없는 것뿐이다

다만 번찰로 돌아가며 채잡는 사람 하나만 있다

모여 사는 사람들이란

모두가 부지런 하여 게으름을 모르고

항시 덜어낼 줄만 알아 모자람 없이

선의와 성실로 일관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의 웃음소리 가득가득 넘쳐나

저마다 쾌청한 하늘 이고 살아가는

시의 공화국에는.

 

문자 정순영

 

고향에서 문자가 왔다

 

문자 속 매화꽃송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해맑은 향수의 시름에

 

어깨동무들과 섬진강물에 멱을 감으며

하얗게 웃던 날이

 

냇물 위에 띄운 꽃잎처럼 세월은 흘러

서글프게 봄비 내리는 날

 

늙은 가지에 핀

매화향기에 무두질한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근황 2 장문석

 

시간이 흐물거린다

 

늦잠이 들어도

후다닥, 깨우지

않고

끼니가 되어도

꼬르륵, 채근하지

않는다

 

술 닷 말과 멧돼지 한 마리

어깨에 둘러메고

삼경의 고개를 넘어

하련의 달빛 마당에 놀아도

째깍째깍

시침 분침 분명했거늘

새벽 발기 꼿꼿했거늘

 

영 매가리가 없다

 

때깔 좋은 넥타이처럼

목에 감겨 근엄

하지도 못하고

노련한 사냥꾼처럼

술청에 앉아 의기양양

하지도 못하고

 

갈수록 뒷덜미가 쓸쓸하다

 

머리나 감아 볼까

오랜만에

구두나 닦아 볼까

쓸데없는 짓

갈 데가 없다

시간은

발딱 서지를 않는다

 

뭐라? 비아그라?

 

못에 대한 단상 - 정성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쓸 영정 사진을 걸려고

안방 벽에 못을 박았다

못머리를 쳐대자

콘크리트 벽은 아직은 못을 받아드릴 때가 안 되었다는 듯이

구부러지고 만다

못을 바르게 세워 쳐 댈수록

제 몸의 상처를 용납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벽

사정없이 망치질을 해 대자

못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듯이 날카로운 끝을 생살에 받아들인다

올곧게 서 있는 못에

아버지의 일생을 걸어두자

굽은 못도

바로 세워 주기만 하면 제 할 일 다 할 수 있다고

자존심을 세운다

참 다행이다

작은 못 하나가 방안에서는 영정사진걸이가 되고

부엌에서는 냄비걸이가 되고

뒤안 벽에서는

삽걸이 호미걸이가 되다니

못의 위대한 힘이 꽃으로 피는 것이었다

 

초대 - 민문자

 

초대를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

그것도 코로나 거리 두기 시대

구름산으로의 저녁 식사 초대

언제 만나도 반가운 후배들 셋이 반겼다

 

푸짐한 상추쌈 숯불고기에 우렁된장의 미각을 취하고

서양화가 전시되고 있는 고즈넉한 갤러리에서

달콤한 대추차를 마시며 후배 시인이 세모에 열 계획이라는

사진 전시회에 구마루 낭송회도 참여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의 환희에 찬 모습이 보기 좋다

함께 낭송 공부하던 지난날이 있어 모두

이제 어디를 가나 자신감 있게 활동한다고 감사하단다

세월이 흘러 청출어람이 된 그들을 바라보니 대견타

 

디지털 자본주의 - 박미현

 

휴대폰 알람으로 시작되는 하루

 

공유와 일정을 지나

복사와 저장을 지나

옷깃 스치듯 안경 너머

틈틈을 지나

안구 건조증을 지나

삼가 고인의 명복을 지나

연락 없이 지내던 지인의 소식을 지나

안구 건조증을 지나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갑론을박 치열한 공방을 지나

욕설을 지나

누구누구를 지나

동시다발을 지나

다종다양한 패턴을 지나

뉴스와 검색을 지나

알고리즘을 지나

눈이 머리 꼭대기에 있다는 악어처럼 충혈된 두 눈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내 손 안의 세상

 

끊을 건 사람만이 아니다

 

 

                                             * 월간 우리202112402호에서

                                                  * 사진 : 가을 나뭇잎(수채화 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