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 올레
먼 올레를 보거라
거기 누가 오는지
대청마루에 기대앉은 할머니
지팡이 끝으로 가리키던
바다 구름 바람 하늘
아무도 없는데요
그냥 먹구슬나무에 바람
억새꽃 너머에 구름
휘파람새 호로로기요 울고
다 지나가고 없네요
그냥 먼 올레를 보거라
바다 위에 구름
구름 위에 하늘
그사이에 바람이 바뀌었는지
누가 떠나가는지
♧ 옛 시풍
떨어진 나뭇잎에 눈이 쌓이듯
시나브로 세월은 흘러가고
이방의 구름 너머로 그려 보는 고향
뛰놀던 옛 동산 흔적은 가뭇없다
무겁게 걸어온 인생의 길
봄볕에 사라진 산골짝의 눈이었구나
♧ 티티새가 우는 저녁
티티새가 우는 저녁
현창에 이른 달이 떴다
더디게 내리는 북반구의 달
봄이 벌써 다 간다고
이맘때쯤 고향에는 뻐꾸기가 울었던가
검은 산등성이에 어리는 오로라
♧ 깨어 잠
새벽에 잠드는 나를
아는 이 없다
훤한 빛의 장막 속
눈이 빨간 금붕어처럼
잠이 들었다가 깨었다가
자정에서 정오까지
삶과 그림자 곁눈질하는
잠과 꿈 사이
♧ 송당의 밤비
송당에 밤비 내려
초승달을 가렸다
홀로 문득 깨어
잊힌 얼굴 그리다가
거세진 빗소리에
이름 불러 보았다
♧ 시인 유형론
타고난 시인
만들어진 시인
시인이 되고자 한 시인
시인이고 싶은 시인
의지의 시인
욕망의 시인
노력의 시인
영혼의 시인
시를 짓는 시인
시를 노래하는 시인
시를 만드는 시인
시를 그리는 시인
웃는 시인
우는 시인
웃기는 시인
외치는 시인
썰렁한 시인
덤덤한 시인
시를 쓰는 시인
시를 뱉는 시인
시를 받아쓰는 시인
시를 전하는 시인
시를 던지는 시인
언제나 시인
가끔 시인
한때 시인
폼만 시인
* 진하 시집 『제웅의 노래』 (시작시인선 0394, 2021)에서
* 사진 : 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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