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월간 '우리詩' 2022년 4월호 406호의 시(1)

김창집 2022. 4. 2. 00:25

 

은산한옹隱山閑/閒翁 - 洪海里

 

신축년 섣달 그믐부터

임인년 정월 초하루까지

 

내가 따르고 내가 마시고

혼자 마시고 홀로 따르고

 

한 잔 두 잔

한 병 두 병

 

낮에는 나무 아래서

밤에는 달빛에 젖어

 

막걸리 친구 삼아

세 상 다 비우네.

 

 

 

낮은 목소리로 이규홍

 

오늘의 예배 시간

성경을 읽고

강론을 듣고

빵을 떼어 나누려 할 때

우리는 두 손을 합장하고

평화의 인사를 나누지요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내 안의 평화를 끌어올리면

여럿이 밀어준 기도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려도

성큼성큼 건너갑니다

평화 실은 눈빛이

그대 곁에 머물면

고요한 시간을 넘어

낮은 목소리로 세상의

모든 이에게 평화를 빕니다

 

 

 

새내기 도경희

 

어딘들 마다할까

베틀에 앉아 그리움의 올을 짜던

햇귀

 

논두렁 아래

눈 보시게 늘어선

금잔화 쥐손이풀 쇠별꽃

 

봉오리 틈 사이

주름 펴고

솜털 보송거리는

화관 만드노라

성긋벙긋 웃고 있네

 

연한 풋내 풍기며

누굴 찾아 왔을까

곱디고운 소녀들

 

한순간 시간과 숨조차 멈춰 세운

내사

꽃잎마다 달고 있는 이슬 쓸어 모아

눈물 맑게 씻으리라

 

 

 

- 이 산

 

낮은 천장

침침한 백열등이 건들거린다

 

앉은뱅이 식탁을 마주하며

내로라하는 친구 예닐곱이 모였다

쪽문이 열리고

 

개 아닌 분 있어요?

전부 개 맞죠?

 

 

 

겨울 바다 이주리

 

철썩, 몸이 지나간 자리

새끼 게 두 마리 남겨 놓고

일몰의 마지막 햇빛

한 생애를 등록하는

저 선짓빛 출산

바다가 붉은 몸 다시 한 번 뒤척이면

내가 남겨둔 자식 둘

일몰의 수평선에

조등 하나 걸어 둘 거야

울지 마라 애들아

저 별은 내일 아침 일출로 가는 거야

 

 

 

기억의 페이지 - 천도화

 

보랏빛으로 번진 부질없는 꿈

싱숭생숭한 기분 다독이려

외출을 서두른다

 

한철 인연은 그렇게 떠나가지만

가슴으로 젖어드는 비명은 명치끝에 걸린다

말갛게 부풀다 터지는 풍선처럼?

꽃망울 터널을 이룬 낭창낭창한 나뭇가지에

눈물이 대롱대롱 맺힌다

 

장미는 가시를 세운 그늘 뒤로

도도한 꽃을 피우려 화려한 몸살을 앓지만

어설픈 햇살 사이로 수많은 발소리 들으며

 

여린 몸짓 미완성으로

함께하지 않아도

기댈 어깨가 없어도

귀에 익은 소리에 놀라 뒤돌아보지만

열꽃처럼 피지 못한,

가슴을 할퀴고 떠난 지독한 이름

 

부드러운 눈빛도 속삭이던 밀어도

약속 없이 곁에 와 앉는데

어쩌자고 울컥울컥 치미는 소리

느린 풍경 속으로 바스러지는

아픈 기억들

 

 

                                       *월간 우리(20224월호 406)에서

                                         *사진 : 동강할미꽃(필터 - 수채화 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