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귀포식西歸浦式 사랑
날 받아놓고
배가 뜨지 않아도
섬이사 끄덕도 없다
오히려 깊어지는
서귀포식 사랑
천년 숲 늪가에
전설처럼 새가 운다
서불徐福이여
불로초不老草 한 뿌리쯤
가슴에 캐고 떠날 수 있으리
천년 사랑 묻고
서西으로
서천西天바다로
돌아갈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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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불(徐市) 혹은 서복(徐福) :진시황의 명으로 불로초를 캐기 위해 영주(탐라)로 왔다는 인물. 서귀포(西歸浦)란 지명이 서(西)으로 돌아갔다 해서 비롯됐다 함.
♧ 가파도加波島 청보리밭 길
가파도로 간다
시린 봄 빛
멍석처럼 깔린
가파도 청보리밭 길을 간다
청보리밭 담가에 앉아
버려진 꿈 조각 챙겨들고
산발한 채로
허공에 매달려 우는 바람을 맞으며
억질게 살아온
생애의 매듭
하나씩 풀어놓고 온다.
♧ 성산 일출봉城山日出峯에 올라
얼음장 푸른 새벽 산길
일출을 보려고
단숨에 올랐네
운무雲霧 자락 흘러내리는
바위산 꼭대기에 서서
갈라지는 바다의 당 굽어보며
활궁처럼 휘어지는 수평선 끝
눈길 맞추었네
황홀하여라 아아,
세상 문 열리는 순간
빛무리 쏘아대는 홍염紅焰의 바다 위
활강滑降하는 햇덩이
나는 바로 볼 수가 없었네
심장의 핏줄들이 터지는 하였네.
♧ 산방굴 앞에서
수천 계단쯤 되리라 싶어
올라가며 발품 헤이다가
송뢰 숲
구름 덮는 바람에
잊어 버렸네
오를수록 산은 깊고 높고
자궁 같은 용암 동굴 앞에 서서
부처님 전 삼배하고
쌈짓돈 한 닢 공양하였네
저 아랫 세상
다시 태어나도
이 산방굴 속 천장 뚫는 물소리
듣고 살게 하옵소서 기원 드렸네.
♧ 섬 안의 섬 마라도에 가서
섬 안의 섬 마라도에 가서
바람 한 줄기 끌고 옵니다
나 홀로 빈 방에
바람을 펴고 잠을 잡니다
파도소리에
밤새
뒤척이는 꿈
방황의 새가 되어 날아갑니다
먼 수평선 끝 한 자락 물고.
♧ 한라산의 봄
오뉴월 산은
가슴이 달아오른다
숲 바람에 밀려
산의 가슴에 안기니
현기증이 먼저 일어났다
사방팔방 흩어지는 볕살들
투명한 꽃그늘 속
목피 쏟는 새 울음
귀를 막고 들었다
어른어른 내빗는 가슴살 사이
옥양목 같은 구름 한쪽 들척이더니
향내가 일었다
나는 혼절한 채로 기어나왔다
한라산 머리가
아득히 높았다.
* 김용길 시집 『빛과 바람의 올레』(서울문화사, 2010)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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