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용길 시집 '빛과 바람의 올레'의 시(2)

김창집 2022. 5. 9. 00:39

 

서귀포식西歸浦式 사랑

 

날 받아놓고

배가 뜨지 않아도

섬이사 끄덕도 없다

오히려 깊어지는

서귀포식 사랑

천년 숲 늪가에

전설처럼 새가 운다

서불徐福이여

불로초不老草 한 뿌리쯤

가슴에 캐고 떠날 수 있으리

천년 사랑 묻고

西으로

서천西天바다로

돌아갈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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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불(徐市) 혹은 서복(徐福) :진시황의 명으로 불로초를 캐기 위해 영주(탐라)로 왔다는 인물. 서귀포(西歸浦)란 지명이 서(西)으로 돌아갔다 해서 비롯됐다 함.

 

 

 

가파도加波島 청보리밭 길

 

가파도로 간다

시린 봄 빛

멍석처럼 깔린

가파도 청보리밭 길을 간다

 

청보리밭 담가에 앉아

버려진 꿈 조각 챙겨들고

산발한 채로

허공에 매달려 우는 바람을 맞으며

 

억질게 살아온

생애의 매듭

하나씩 풀어놓고 온다.

 

 

 

성산 일출봉城山日出峯에 올라

 

얼음장 푸른 새벽 산길

일출을 보려고

단숨에 올랐네

운무雲霧 자락 흘러내리는

바위산 꼭대기에 서서

갈라지는 바다의 당 굽어보며

활궁처럼 휘어지는 수평선 끝

눈길 맞추었네

 

황홀하여라 아아,

세상 문 열리는 순간

빛무리 쏘아대는 홍염紅焰의 바다 위

활강滑降하는 햇덩이

나는 바로 볼 수가 없었네

심장의 핏줄들이 터지는 하였네.

 

 

 

산방굴 앞에서

 

수천 계단쯤 되리라 싶어

올라가며 발품 헤이다가

송뢰 숲

구름 덮는 바람에

잊어 버렸네

 

오를수록 산은 깊고 높고

자궁 같은 용암 동굴 앞에 서서

부처님 전 삼배하고

쌈짓돈 한 닢 공양하였네

 

저 아랫 세상

다시 태어나도

이 산방굴 속 천장 뚫는 물소리

듣고 살게 하옵소서 기원 드렸네.

 

 

 

섬 안의 섬 마라도에 가서

 

섬 안의 섬 마라도에 가서

바람 한 줄기 끌고 옵니다

 

나 홀로 빈 방에

바람을 펴고 잠을 잡니다

파도소리에

밤새

뒤척이는 꿈

방황의 새가 되어 날아갑니다

 

먼 수평선 끝 한 자락 물고.

 

 

 

한라산의 봄

 

오뉴월 산은

가슴이 달아오른다

숲 바람에 밀려

산의 가슴에 안기니

현기증이 먼저 일어났다

 

사방팔방 흩어지는 볕살들

투명한 꽃그늘 속

목피 쏟는 새 울음

귀를 막고 들었다

 

어른어른 내빗는 가슴살 사이

옥양목 같은 구름 한쪽 들척이더니

향내가 일었다

나는 혼절한 채로 기어나왔다

한라산 머리가

아득히 높았다.

 

 

                  * 김용길 시집 빛과 바람의 올레(서울문화사, 201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