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양중해 시집 '파도'의 시(3)

김창집 2022. 5. 28. 10:35

 

晩鐘(만종)

 

지루하던 悲劇(비극)

이제 막 호사스런 ()을 닫는가.

 

어느 地涯(지애)를 호젓이 굽어든 외진 싸움터에

마지막 숨 걷우는 모나리자의 微笑(미소) 번지어 아련히

아련히 닥아와 부딪는 浪漫(낭만)의 그 무슨 啓示(계시)라서

 

無緣塚(무연총) 하나를 두고 아득히 지켜오는

이끼 낀 石象(석상) 사늘한 가슴팍에도

슬픈 靑孀(청상)含怨(함원)이 피었으랴.

 

虛荒(허황)時空(시공)陣痛(진통)하는 黃昏(황혼).

 

노여움에 솟구친 불길

원통히 흐른 선지피의 내음

일체의 있음 더불어 굴러가는 最終(최종)의 모습이어!

 

……이렇듯 切迫(절박)하고 嚴肅(엄숙)함으로 하여

지친 肉塊(육괴)()됨을 감싸다오……

 

아아, 지금사

宇宙(우주)倫理(윤리)는 고즈너기 흐리어

아스라 짙어가는 그늘을 꽃도 꿈도 지는데

 

모오든 아름다움이

永遠(영원)()하고

돌아

없는

絶望(절망)

머언 절간에서

女僧(여승)이 목매어 울부짖는 소리…….

 

 

 

燃燒(연소)

 

분위기처럼 고즈너기

모두가 타고 있는 방안에

세상이 어두워서

등불이 파르라니 타고

 

계절이 추워진 것을

화톳불이 빨가니 타오르는데

아무것도 아니면서

꼭 그 고즈넉한 분위기처럼

활 활 타오르는 불꽃은

 

내 가슴이 타는 것이냐.

내 가슴 속의 네가 타는 것이냐.

 

 

 

火爐(화로)

 

冬至(동지)

한밤중

 

여름의 대낮다이

불붙는 地域(지역).

 

깃발 없는 깃대가 부젓가락처럼

廢墟(폐허)의 잿더미에 꽂혀져 있고

 

살아가는 榮光(영광)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두가 고요히 허물어져 가는

 

여기는

니힐리스트의 나라

華麗(화려)한 서울.

 

 

 

독버섯

 

고운 神話(신화)

고향을 찾아 돌아가버린

늙은 멧부리

메마른 기슭.

 

지루한 세월에서

외따로 돌아앉은

호젓한 무덤가에

 

잔디 헤치고 솟아나온

아름다운 독버섯.

 

어느 고만한 自殺(자살) 犯人(범인)

피를 뱉고 뿌려놓은 罪惡(죄악)의 싹이더냐.

 

정녕 이제는

산울림도 일어나지 않은 적막한 풍경 속에는

褪色(퇴색)하다 남은 하늘만이 비끼고

 

아름다운 독버섯 우엔

산까마귀 떼의 검정빛 그 울음이

화장터 연기처럼 서리어간다.

 

 

 

庭園(정원)에서

 

  여기는 東西南北(동서남북)으로 무한히 도막난 領土(영토). 가시철사를 치고 총부리를 겨누어 화약을 터트리면서 무섭게 노려보는 원한의 강산.

 

  그 첩첩 강산을 갈기던 사나운 계절의 물러선 자리. 산등성이나 골짜기마다 난만스리 노래하는 꽃송이들은 어느 염원에서퉁겨져 나온 애환의 얼굴들이라더냐.

 

  가시철사 위를 들장미가 뻗고 들장미 덩굴 위에 나비가 나는 곳.

 

  저기 광야에 나부끼던 깃발을 꺾어 묻고 갈구리 손가락으로 꽃 이파리 한 줌 움켜쥐고서 허공으로 뿌릴라치면 흔들려 돌아가는 세상은 왼통 어지러운 이야기들의 퇴적 위에 노을이 울어 지쳤는데……

 

  이브도 아담도 산 놈도 죽은 놈도 저마다의 자리를 잃은 불안 위에서 산줄기로 뻗고 물줄기로 흘러,/ 봄도 가을도 五月(오월)四月(사월)도 몇 차레를 굽이 감돌다 다시 어색하게 돌아앉은 혼백들끼리 사랑이니 순결이니 어처구니가 없구나.

 

  여기는 잡초와 아름다운 꽃이 비극의 흔적도 없이 난만스레 노래하는 원한의 강산.

 

 

                                     * 양중해 시집 波濤(파도)(신조문화사, 1963)에서

                  * 원시는 한자 표기만 되어 있는 것인데, 편집자가 괄호 속에 독음 처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