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충남작가시선 7 '미소 한 덩이'의 시(3)

김창집 2022. 6. 9. 00:21

 

이정록

 

시란 거 말이다

내가 볼 때, 그거

업은 애기 삼 년 찾기다.

업은 애기를 왜 삼 년이나 찾는지

아냐? 세 살은 돼야 엄마를 똑바로 찾거든.

농사도 삼 년은 부쳐야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며

이 빠진 옥수수 잠꼬대 소리가 들리지

시 깜냥이 어깨너머에 납작하니 숨어 있다가

어느 날 너를 엄마! 하고 부를 때까지

그냥 모르쇠 하며 같이 사는 겨.

세쌍둥이 네쌍둥이 한꺼번에 둘러업고

젖 준 놈 또 주고 굶긴 놈 또 굶기지 말고

시답잖았던 녀석이 엄마! 잇몸 내보이며

웃을 때까지.

 

 

 

유령들의 저녁 식사 - 이정섭

 

  오렌지 향 아래 너는 집요한 내일을 들려주었다

  갓 데운 얼굴이 눈 붉혔지만 너의 혀와 나의 혀는 서로 다른 위도를 간보곤 했다 항로가 궁금한 건 내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목소리였으므로 나는 버뮤다에 남겨진 이름이었으므로

  상어의 지느러미를 베어 닿고자 했던 육지에서는 네가 사랑하는 향기와 나를 확인할 수 없는 시간

  소문 흥건한 창밖을 의무감으로 들여다보았다 밤은 건조해지고

  심해의 약속을 잊은 채 입 닦을 겨를 있었을까

  검은 땅 근처 오렌지 향기가 닻을 내리는 순간 네가 내민 부드러운 목소리는 내일의 모사였을까

  어떤 여자는 내 눈동자로 빚은 목걸이를 팽개치고 떠나고 다른 여자는 식탁을 둘러싼 구약을 뒤져 나의 정체를 수소문하기도 했다

  낯선 식사가 무르익었다

  소란하게 웃음 터진 건 핏줄 불거진 오른손이 떨기나무 속으로 사라질 무렵

  웃음이 마르기 전 열쇠를 삼킨 이웃 남자는 새까만 목을 포기했고 십오 층 옥상에서 신발을 벗은 아이들은 자유로운 관절을 비틀어 지상과의 충돌을 감행했다

  너는 믿지 않았지만 호우경보는 만삭의 공주를 섭취하는 것보다 익숙한 풍경이었으므로 나는 피로 물든 회전문 놀라운 백발을 풀어 헤친

  손 없는 혁명가

  항로 밖으로 이어진 낡은 복도 끝 너는 상어 지느러미와 해저로 가라앉는 아이를 주문했다 갓 데운 얼굴이 집단 서식하는    어떤 왕국에서는 털 고운 나를 손쉽게 양념해 내가 없는 내일 어디쯤 둘러앉아 예의 바르게 시식하고는 했다

  식탁에 앉아 눈 붉힌 얼굴을 탐문하는 손님들 배부른 건 그들이었으므로 나는 적란운 근처를 떠도는 이름이었으므로

  오렌지 향 아래 잠들면 당신과의 풋사랑 후에 차갑게 요리되어 나는

  잠들면

 

 

 

싸락눈 - 이진수

 

  어질어질 뒤로 나자빠지도록 연탄 뚜껑 틈새에 코를 박았지

  울퉁불퉁 비포장길 떠나가는 고물 버스 뒷구멍에서 퍼져 나오는 연기가 나는야 구수해 구수해 키득키득 키득거리며 따라 뛰곤 했지

  그저, 그러면 쪼끔은 더 따뜻해질 거 같어서

 

 

 

굽은 몸 - 이현조

 

검정 비닐봉지 호사를 누리듯

유모차를 타고 느리게

굽은 골목을 간다

 

유모차를 밀며 바쳐진 청춘

씨알 굶어진 아이는 떠나고

유모차만 남았다

 

이놈이 자식보다 나서유

애써 위로해 보지만

안간힘으로 유모차에 기대진 몸

아무리 밀어도 거꾸로 돌지 않는 바퀴

 

삐걱이며 가다 서고 덜컹이며 가다 서고

일용할 비닐봉지도 휘청휘청

된서리 맞은 굽은 몸을 모시고

유모차가 굽은 골목을 간다

 

 

 

우포 어머니

 

물이 키운 풀들이 물을 덮고 있다

물속에서 왕버들이 새들을 불러들인다

풀과 새들과 풀벌레들이 발을 담그고 산다

수면 아래

고여 있는 물이 맑고 조용하다

 

콩나물 기르는 내 어머니

꽃이 피면 피는 대로 새가 울면 우는 대로

고요히 물빛이 된 어머니

세상은 늪이라 하면 늪이라 하셨다

 

나는 딛고 있는 땅을 늪이라 했다

발 빼지 못하는 진흙탕이라 했다

우포에 가서 가슴으로 어린 것을 기르는

고요한 어머니를 뵙고 오기 전까지는

 

 

                                          *충남작가시선 7 미소 한 덩이(심지, 201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