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월간 '우리詩' 6월호의 시(2)

김창집 2022. 6. 11. 00:15

*남방바람꽃

 

바람꽃 민구식

 

외딴 섬

고유명사로 피어

눈부시지 않아도

봄을 하얗게 채색하는 비밀

널 닮은 그 섬에 숨어

바람꽃이 되어보고 싶다

 

다리 한 뼘 물 밖에 걸치고

다른 쪽은 물 건너 섬에 닿아

깊이를 거슬리는 통신

연줄처럼 닿을까

 

안부를 안고 파문을 밀며

바람의 발자국이 이름을 새기는 수면에

꽃으로 오선지를 그립니다

 

바람은 수평선 너머로 가고 싶은

내 속 가득한 그리움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청노루귀 정순영

 

유년 시절의 고향동무를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지리산 형제봉이 또렷이 보이는

강 언덕에 앉아

 

눈시울에 방울방울 맺힌 추억을

양지바른 언덕에 두고 왔더니

 

겨울을 잘 견딘 청노루귀가

보송보송 그리움의 솜털 꽃대를 올려

 

자줏빛 봄 울음을 운다네

자줏빛 봄 울음을 운다네

 

 

 

설악의 가을 채들

 

자욱한 발걸음으로

무산선사霧山禪師 다녀가신 후

 

무슨 말씀 빽빽이 남기셨길래

 

설악의 귀때기가

빨갛다

 

 

 

황학동 - 권늘

 

도심 담벼락 밑에서 고개를 바짝 쳐든

천원의 정찰正札이 당당하다.

여기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다.

다시 한 번 정색을 하고 포즈를 취한

구겨진 상품들이 피곤한 듯 거친 숨을 몰아쉰다

최고의 자부심으로 무장한 상인들의 아픔이 간간이

묻어나는 땟국 흐르는 장터는 모두가 사연이다

맥을 찾아 하나 둘 몰려든 채굴꾼들의 매서운

눈빛이 갈래로 이어진 골목마다 번득인다

이미 제 몫을 다해 숨이 끊기어 가던 구찌 가방은

최고 가문의 출신을 자랑하며 좌판 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오만 원의 가격을 짊어진 채 명문가의 품격을 포기하고

자신을 선택해 달라는 애처로운 표정이 안타까울 뿐이다

벼룩들은 도성 밖으로 밀려난 관우의 사당을 따라

스스로 그곳에 자리를 틀었는지 모를 일이다

골목을 돌고 돌아 저 길 건너 청계천까지 장사진을 친

허기진 물건들은 제 스스로 호객을 한다

사용의 흔적은 새것의 뻑뻑함을 없앤

노동의 대가라는 구매원칙에 부합되는 순간

벼룩의 멍에를 벗은 녀석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초여름 겁 없는 햇볕이 너무 강하다

 

 

 

그녀가 운다 이경애

 

그녀가 운다 자칭 속물이라며

세상 어렵게 살면 한이 없고, 쉽게

살자 맘먹으면 또 그렇게 살아지는 거라며

뼛속까지 속물인 양 징그럽게 웃던 그녀가

펑펑 운다

 

벤치 위 어지러운 은행잎을 손바닥으로 쓱쓱 지우고 주저앉아

푸르다 녹아버릴 것만 같은 하늘 한 번 보고

야트막한 언덕 위 수북한 산국더미 힐끗 쓸어보더니

느닷없이 히야! 세상 기가 막히게 곱다! 하고는

느닷없이 운다

 

- 온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워지는 동안 우리는 뭘 했을까

 

푸르른 청보리밭 거침없이 밟고 온 그녀가

불붙은 당단풍 한 잎보다 작아진 그녀가

빈 가지에 걸린 바람 소리로

자꾸만 운다

 

운다고 옛사랑이 오겠냐마는.

 

 

                                                      * 월간 우리20226월호(통권 408)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