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 이정록
시란 거 말이다
내가 볼 때, 그거
업은 애기 삼 년 찾기다.
업은 애기를 왜 삼 년이나 찾는지
아냐? 세 살은 돼야 엄마를 똑바로 찾거든.
농사도 삼 년은 부쳐야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며
이 빠진 옥수수 잠꼬대 소리가 들리지
시 깜냥이 어깨너머에 납작하니 숨어 있다가
어느 날 너를 엄마! 하고 부를 때까지
그냥 모르쇠 하며 같이 사는 겨.
세쌍둥이 네쌍둥이 한꺼번에 둘러업고
젖 준 놈 또 주고 굶긴 놈 또 굶기지 말고
시답잖았던 녀석이 엄마! 잇몸 내보이며
웃을 때까지.
♧ 유령들의 저녁 식사 - 이정섭
오렌지 향 아래 너는 집요한 내일을 들려주었다
갓 데운 얼굴이 눈 붉혔지만 너의 혀와 나의 혀는 서로 다른 위도를 간보곤 했다 항로가 궁금한 건 내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목소리였으므로 나는 버뮤다에 남겨진 이름이었으므로
상어의 지느러미를 베어 닿고자 했던 육지에서는 네가 사랑하는 향기와 나를 확인할 수 없는 시간
소문 흥건한 창밖을 의무감으로 들여다보았다 밤은 건조해지고
심해의 약속을 잊은 채 입 닦을 겨를 있었을까
검은 땅 근처 오렌지 향기가 닻을 내리는 순간 네가 내민 부드러운 목소리는 내일의 모사였을까
어떤 여자는 내 눈동자로 빚은 목걸이를 팽개치고 떠나고 다른 여자는 식탁을 둘러싼 구약을 뒤져 나의 정체를 수소문하기도 했다
낯선 식사가 무르익었다
소란하게 웃음 터진 건 핏줄 불거진 오른손이 떨기나무 속으로 사라질 무렵
웃음이 마르기 전 열쇠를 삼킨 이웃 남자는 새까만 목을 포기했고 십오 층 옥상에서 신발을 벗은 아이들은 자유로운 관절을 비틀어 지상과의 충돌을 감행했다
너는 믿지 않았지만 호우경보는 만삭의 공주를 섭취하는 것보다 익숙한 풍경이었으므로 나는 피로 물든 회전문 놀라운 백발을 풀어 헤친
손 없는 혁명가
항로 밖으로 이어진 낡은 복도 끝 너는 상어 지느러미와 해저로 가라앉는 아이를 주문했다 갓 데운 얼굴이 집단 서식하는 어떤 왕국에서는 털 고운 나를 손쉽게 양념해 내가 없는 내일 어디쯤 둘러앉아 예의 바르게 시식하고는 했다
식탁에 앉아 눈 붉힌 얼굴을 탐문하는 손님들 배부른 건 그들이었으므로 나는 적란운 근처를 떠도는 이름이었으므로
오렌지 향 아래 잠들면 당신과의 풋사랑 후에 차갑게 요리되어 나는
잠들면
♧ 싸락눈 - 이진수
어질어질 뒤로 나자빠지도록 연탄 뚜껑 틈새에 코를 박았지
울퉁불퉁 비포장길 떠나가는 고물 버스 뒷구멍에서 퍼져 나오는 연기가 나는야 구수해 구수해 키득키득 키득거리며 따라 뛰곤 했지
그저, 그러면 쪼끔은 더 따뜻해질 거 같어서
♧ 굽은 몸 - 이현조
검정 비닐봉지 호사를 누리듯
유모차를 타고 느리게
굽은 골목을 간다
유모차를 밀며 바쳐진 청춘
씨알 굶어진 아이는 떠나고
유모차만 남았다
이놈이 자식보다 나서유
애써 위로해 보지만
안간힘으로 유모차에 기대진 몸
아무리 밀어도 거꾸로 돌지 않는 바퀴
삐걱이며 가다 서고 덜컹이며 가다 서고
일용할 비닐봉지도 휘청휘청
된서리 맞은 굽은 몸을 모시고
유모차가 굽은 골목을 간다
♧ 우포 어머니
물이 키운 풀들이 물을 덮고 있다
물속에서 왕버들이 새들을 불러들인다
풀과 새들과 풀벌레들이 발을 담그고 산다
수면 아래
고여 있는 물이 맑고 조용하다
콩나물 기르는 내 어머니
꽃이 피면 피는 대로 새가 울면 우는 대로
고요히 물빛이 된 어머니
세상은 늪이라 하면 늪이라 하셨다
나는 딛고 있는 땅을 늪이라 했다
발 빼지 못하는 진흙탕이라 했다
우포에 가서 가슴으로 어린 것을 기르는
고요한 어머니를 뵙고 오기 전까지는
*충남작가시선 7 『미소 한 덩이』 (심지, 2012)에서
'문학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간 '우리詩' 6월호의 시(2) (0) | 2022.06.11 |
---|---|
2022 상반기 '혜향문학'의 시와 시조(1) (0) | 2022.06.10 |
김영기 시조집 '갈무리하는 하루'(3) (0) | 2022.06.08 |
김종호 시집 '날개'의 시(4) (0) | 2022.06.07 |
허유미 고주희 김애리샤 김효선 시집 '시골시인–J' (0) | 2022.06.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