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憤怒(분노)
어느 음흉한 놈이
正義(정의)의 핏줄을 헐어 놓았기에
本然(본연)에서 憤怒(분노)하여 솟구쳐 흐르는 火焰(화염)이
우람한 雷聲(뇌성)으로 터져 나왔을까.
이렇게도 무서운 불덩어리가
어느 깊이에 간직되어 있었기
退色(퇴색)한 太陽(태양)을 받들고
오직 긴 물줄기에 앉아
귀는 먹고
말 못하던
이 後天的(후천적) 不具者(불구자)들이
그 아들들이 딸들이
모든 實存(실존)들과 일체의 狀況(상황) 以前(이전)
原始(원시)의 진한 노여움으로
저 오만하고 老朽(노후)한
世紀(세기)의 偶像(우상)을 문어뜨렸을까.
그 분노는
最後(최후)의 목숨에서의 最終(최종)의 부르짖음이리라.
한 때는 얽매이고
한 때는 짓밟히고
죽이려면 反抗(반항)하고
살아 다시 부르짖던
一九一○年
一九一九年
一九四七年
그리고 一九六○年까지
八月 二十九日
三月 一日
八月 十五日
아아, 四月 十九日이여!
굽이치는 역사의 溪谷(계곡)을 거쳐
自由(자유)의 祖國(조국) 새 날을 맞아
핏빛 念願(염원) 아래
불을 뿜고 터진
젊은 憤怒(분노)가 奔流(분류)하는 새벽을
聖堂(성당)에서도
佛堂(불당)에서도
일제히 鐘(종)은 울렸더니라.
♧ 첫눈
첫눈은 내리고 있다.
불안에 차 찌푸린 하늘 아래
차고 물기 머금은 바람은 불고
가난한 꼴로 첫눈은 내리고 있다.
닭의 우리 안에도 내리고 있다.
닭들이 눈 내리는 곳으로 튀어나왔다.
배고픈 닭들은 다투며 튀어나왔다.
모이의 환상에서 튀어나왔다.
쌀알 같은 눈은 내리고 있다.
눈은 내리면서 녹아내리고 있다.
어린 닭은 눈방울을 쪼아 보았다.
어떤 닭은 눈방울에 외면을 했다.
어떤 닭은 아직도 눈방울 찾고 있다.
어떤 놈은 닭의 장으로 들어가 버렸다.
닭의 장에 들어갔던 놈이 나오기도 한다.
어떤 닭은 뜻깊은 목소리로 나직이 울었다.
어떤 닭은 우리 밖으로 내다보고 있다.
어떤 닭은 뺨을 갸웃 기울여 하늘을 보고 있다.
다시 들어가 버리는 닭도 있다.
모이를 갖다 주지 않는 주인 할아버지가
눈망울을 쪼아보는 닭을 지켜 섰다가
손에 입김을 불어넣으며
음산한 방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눈은 내리고 있다.
닭의 우리 안에도 눈은 내리고 있다.
할아버지의 집 안에도
차고 어둡고 외로운 겨울이 들이닥쳤다는
이제 첫눈은 내리고 있다.
♧ 鐘哭(종곡)
오오, 종이 통곡한다.
눌러온 원한이 복받쳐 터진 듯
녹 쓸은 종이 허공을 운다.
물에서 식어버린 처녀의 동자처럼
흐릿한 世紀(세기)의 하늘 아득히
절망에 미친 生靈(생령)과 死靈(사령)들이
또 한 번 소리 모두어 외치며 운다.
세상의 한 구석 절박한 섬에
임종이 다가선 숨 가쁜 刹那(찰나)를
아아 무수한 혼백을 부르는 소리.
아아 무수한 혼백이 외치는 소리.
피어린 신음소리 통곡소리 저주소리
소리 소리 소리 소리……
모두가 그저 허허롭게 허물어져가는
여기 異域(이역) 黃昏(황혼)을 녹 슬은 종이 운다.
♧ 雪夜(설야) 抒情(서정)
외로운 절에 호롱불도 지워진
燦爛(찬란)한 어두움 아래
잎이 진 숲속
산까마귀의 둥우리
……나의 가슴에
눈이 나린다.
殺戮(살육) 나서는 修羅(수라)의 향연처럼
十二月(십이월)의 밤은 몸부림을 치고
서러이 昇華(승화)한 고운 영혼들이
지향도 없이 寒天(한천)에 나부껴라.
나의 꿈과 너의 젊음
우리의 말미암음은 눈물이 아니구나.
아아, 모두들
어떻게 되어간다는 것인지
깊은 밤
나도 없고 너도 없는 가슴
……비인 숲속에는
눈이 쌓인다.
* 양중해 시집 『波濤(파도)』 (신조문화사, 196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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