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한희정 시집 '목련 꽃 편지'의 시조(2)

김창집 2022. 6. 22. 00:12

 

소맥시대

 

빌딩 숲 샛길로 바람 맞은 반달이 간다

깐깐한 척 하다가도 때론 무던하게

색다른 뒤엉킴으로 하나 되는 길을 찾네

 

이분법, 사이사이 거스르고 흽쓸리며

취기 오른 조명 아래 눈꼬리가 풀린다

별들도 은하수 건너 서로 눈을 맞추는

 

공존은 너와 나 다름을 인정하는 것

더하고 빼는 계산 없어도 절로 둥글어지는

또 한잔, 도시의 달은 경계를 풀고 있다

 

 

 

풀의 선택

 

밟혀도 다시 일어나

고개 들 줄 아는 것

 

바람이 와 흔들면

꽃필 줄도 아는 것

 

저것 봐!

운명이라는 건

자발적 선택이라는 것

 

 

 

개망초 부처님

 

절 마당 안에서는 풀꽃조차 부처인 걸

 

요사채 개망초가 방석 셋을 깔고 앉아

 

지그시 보랏빛 미소로 나를 불러 앉힌다

 

 

 

신도시의 밤

 

1

하천변 둔덕에 산수유꽃 지는 밤

치솟은 고층 아파트 빚투빚투 무성한데

형광색 가로등 아래 오고가는 페르소나

 

2

방풍림 삼나무보다 더 높아서 몇 층일까

세고 또 세어 봐도 자꾸만 놓치고 마는

밤새워 밑줄 그으면 저 꼭대기 가 닿을까

 

3

한번쯤 당당하게 별 볼일은 있어야지

그림자만 밟고 가다 고개 든 어느 가장

희부연 열아흐레 달이 지친 얼굴 비추네

 

 

 

아이야, 나무처럼

 

비탈 선 나무들은 제 스스로 중심 잡는대

 

휘면 휜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

 

돌 움켜 생사를 넘듯 뿌리를 내린단다

 

 

이따금 언쟁에도 함께 사는 법을 배워

 

재촉하지 않아도 스스로 피고 지는

 

때 되면 몸살을 앓던 산벚꽃도 환하다

 

 

아이야, 흔들릴수록 중심을 찾아가지

 

곶자왈 나무처럼 네가 선 그 자리에

 

꿈 찾는 이역만리가 발아래 버틴단 걸

 

 

 

                                               * 한희정 시집 목련꽃 편지(한그루, 202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