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맥시대
빌딩 숲 샛길로 바람 맞은 반달이 간다
깐깐한 척 하다가도 때론 무던하게
색다른 뒤엉킴으로 하나 되는 길을 찾네
이분법, 사이사이 거스르고 흽쓸리며
취기 오른 조명 아래 눈꼬리가 풀린다
별들도 은하수 건너 서로 눈을 맞추는
공존은 너와 나 다름을 인정하는 것
더하고 빼는 계산 없어도 절로 둥글어지는
또 한잔, 도시의 달은 경계를 풀고 있다
♧ 풀의 선택
밟혀도 다시 일어나
고개 들 줄 아는 것
바람이 와 흔들면
꽃필 줄도 아는 것
저것 봐!
운명이라는 건
자발적 선택이라는 것
♧ 개망초 부처님
절 마당 안에서는 풀꽃조차 부처인 걸
요사채 개망초가 방석 셋을 깔고 앉아
지그시 보랏빛 미소로 나를 불러 앉힌다
♧ 신도시의 밤
1
하천변 둔덕에 산수유꽃 지는 밤
치솟은 고층 아파트 빚투빚투 무성한데
형광색 가로등 아래 오고가는 페르소나
2
방풍림 삼나무보다 더 높아서 몇 층일까
세고 또 세어 봐도 자꾸만 놓치고 마는
밤새워 밑줄 그으면 저 꼭대기 가 닿을까
3
한번쯤 당당하게 별 볼일은 있어야지
그림자만 밟고 가다 고개 든 어느 가장
희부연 열아흐레 달이 지친 얼굴 비추네
♧ 아이야, 나무처럼
비탈 선 나무들은 제 스스로 중심 잡는대
휘면 휜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
돌 움켜 생사를 넘듯 뿌리를 내린단다
이따금 언쟁에도 함께 사는 법을 배워
재촉하지 않아도 스스로 피고 지는
때 되면 몸살을 앓던 산벚꽃도 환하다
아이야, 흔들릴수록 중심을 찾아가지
곶자왈 나무처럼 네가 선 그 자리에
꿈 찾는 이역만리가 발아래 버틴단 걸
* 한희정 시집 『목련꽃 편지』 (한그루, 2022)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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