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윤행순, 시집 '간호사도 가을을 탄다' 발간

김창집 2022. 6. 23. 00:34

* 칼라 꽃

 

시인의 말

 

어느 화가의 물방울처럼

세상의 모든 꿈들이

온통 영롱한 물방울로 보인다.

아름다운 사람아.

 

 

저지오름 길목에서 윤행순

 

 

 

고해성사

   -간호일지 1

 

사십 초반쯤 될까, 그을린 김씨는

마신 술을 깨고 싶다” “주사를 놓아다오

형광빛 덜 풀린 취기 두 눈이 허물어진다

 

가족도 친구도 없이 저 혼자 들어선 병실

그리움이 술처럼, 술이 또 어머니처럼

수차례 고해성사도 소용없는 저 절규

 

 

* 칼라 꽃

 

동병상련

    -간호일지 2

 

하룻밤 새 주객이 전도되는 것을 봤다

남편 손 닦아주며 간호하던 아내가

오히려 병이 또 도져

수술장으로 들어간다

 

남편도, 아내도 잠시 눈을 감은 이 시간

시한부 내 어머니 수술하던 그날처럼

가을 끝 동병상련의 그 등불을 지킨다

 

 

 

초로기 치매

    -간호일지 4

 

아침 여덟 시쯤 출근을 하자마자

젊고 건장한 남자 응급실에 실려온다

한 움큼 햇살도 함께 구급차를 따라온다

 

나는 소방관이다첫인사를 건넨다

그런가, 그런가 하고 그 말을 믿었는데

내 얼굴 대할 때마다 소방관이라 또 그런다

 

이 사람은 어느 일터에서 근무했던 사람일까

때때로 링거병을 소화기처럼 둘러메고

병상에 분사를 하는 진단명

초로기 치매

 

 

간호사도 가을을 탄다

     -간호일지 6

 

사실은 간호사도 가을을 타는 거다

사랑한다 그 말조차 단풍처럼 떨군 저녁

허전한 나뭇가지에 링거병을 꽂고 싶다

 

 

 

간호사의 하루

     -간호일지 7

 

간호사의 하루는 누가 간호해주나

환자들 욕지거리야 한쪽 귀로 흘리지만

밤새껏 아프단 소리

이젠 내가 더 아프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응급벨

어느 쪽이 먼저인지 어느 쪽이 나중인지

벨소리 벨소리 겹쳐 히어뜩한 허혈증

 

논문도 시 한 편도 직장 일도 심근경색

의사도 어머니도 처방전이 없는 날

하루쯤 날 받아놓고 심초음파 찍고 싶다

 

 

                 * 윤행순 시집 간호사도 가을을 탄다(문학과 사람, 2022)에서

                                                   사진 : 칼라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