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정드리문학 제10집 '바람의 씨앗'의 시조(1)

김창집 2022. 6. 24. 00:29

 

머체골 제주참꽃 - 오승철

 

방선문 영구춘화야 소문날 만큼 났지만

한라산 그 반대편

서중천변 숨어들어

봄이면 도둑눈 털고 출몰하는 저걸 어째

 

저걸 어째 이 사람아, 저 꽃 발톱 저걸 어째

병아리 채어가듯 한 마을 다 채갔나

봉분만 남은 머체골,

돌담 올레 저걸 어째

 

은근한 약불인데

자배봉도 태우려나

그때 그 4월 들녘 섭섭하신 아버지

박달래 오가는 길목 여태 번을 서는가

 

 

 

고냉이찰흙 - 문순자

 

엔간한 비바람쯤 이골이 난 섬의 서쪽

옹기마을 신평리엔 연못도 항아리 같다

긴 세월 흙 파낸 자리,

고향 하늘 앉은 못물

 

저들은 제주점토를 고냉이찰흙이라 한다

부뚜막 기웃대다 혼쭐난 들고양이

홧김에 앙갚음하듯 싸지른 똥만 같은

 

그 흙으로 구웠겠다

잘 여문 이 물허벅

어쩌다 허벅장단 팽강팽강 피어나면

어머니 춤사위 따라 별자리도 휘어졌다

 

한 번쯤 금이 안 간 청춘이 어딨으랴

잣밤나무 꽃 향기 울담을 넘는 봄밤

밤새낭 우리집 주변

응 아응 떠돈다

 

 

 

강정, 그 이후 - 조영자

 

그래도 고향이다, 강정은 고향이다

고향은 누구에게나 오월동주吳越同舟 같은 건지

범섬도 돌고래 떼도 비켜 가는 강정 바다

 

나는 단발머리 중학생 해녀였다

외상으로 들고 온 테왁 하나 둘러매면

마을은 바다 한켠을 나에게 내주었다

 

야트막한 그 바다 자그마한 숨비소리

서귀포 매일시장 보말 몇 줌 팔고 나면

못 본 척 등을 돌리던 웃드르 출신 어머니

 

노랑 깃발 태극 깃발 여태껏 펄럭여도

강정천 줄기 따라 은어 떼는 돌아왔다

밤이면 방파제 너머 집어등도 돌아왔다

 

 

소리를 보다 김영순

 

수업 중에 자꾸만 걸려오는 어머니 전화

몇 번이나 대답해도 귀가 멀어 막막하고

목소리 크게 내지 못해 나는 또 먹먹하고

 

보청기 주파수는 어디로 향한 걸까

부재중 문자를 따라 한달음 달려가면

-일 없다, 밥이나 먹자

이 말 저 말 궁굴리는데

 

-안 들린다면서요? 지금은 들려요?

저녁밥 먹다 말고 내 얼굴 빤히 보다가

-입 모양 보면 다 알지

순순히 고백하신다

 

 

 

어머니의 가을 - 강현수

 

주인이 떠난 것을 과수원도 아나 보다

해마다 비상품이 상품보다 늘어 간다

이문이 없어도 좋다 출근하던 아버지

 

아버지 가위소리 어머니 가위소리

작년엔 또각또각 연애질 소리 같았다

그 소리 그리운 건지 가위 놓은 어머니

 

풍작은 아니어도 평작이 욕심인가

통장으로 처음 들어온 어머니의 성적표

가을은 늘 청맹과니 저 혼자 잘 익는다

 

 

                                            *정드리문학 제10바람의 씨앗(황금알, 202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