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승달 – 김용길
부처님 집에서
밤을 새우다
늙은 짐승 같은 건너 숲속
밤바람 울리는 소리
들창 열면
대웅전 처마 끝
풍경처럼 흔들리는 초승달
깊은 허공 사이
부처님 눈썹 반쪽
♧ 의료 민영화 – 김종석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
사람이 돈 만들고
돈이 사람 살린다
사람 살린다?
사람 살린다!
사람 살린다……
아팠다 하면
서민들
민영화 병원은
♧ 춘분 – 오영호
움츠린
구상나무
뽀얀 가지 끝에
겨우내
봉인된 꿈
햇살이 뜯어낼 때
연둣빛
생명의 무늬
내 손금에 번지네
♧ 샹그릴라의 꿈 – 이창선
허공에 춤을 추는 하루살이 군상群像들
그 속에 휩쓸려 미물로 살아왔다
욕망이 자라고 자라 높아가고 빨라간다
티베트 불교의 전설이 파드마삼바바*는
이상향인 연꽃에서 다시 부활하여
중생을 구제하면서 이상사회를 만든다
말없는 소유욕 그마저 부질없다
남북극 빙하들이 맥없이 무너진다
마음의 어리석음은 부처님 가운데 토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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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드드 삼바바 : 티베트 불교에서 등장하는 인물로, 부처는 자기가 죽은 뒤 ‘파드마 삼바바(蓮華生)’라는 이름으로 부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설에 따르면 파드마 삼바바는 연꽃 봉우리 안에서 태어난 부처님이라고 한다.
♧ 내장사에서 - 임관표
덮은 것은 그것뿐이랴
겨울 눈꽃의 향연을 보며
세월의 무상을 느끼고
내 삶의 영혼이 숨 쉴 때를 기다린다.
선홍빛 적우赤雨는 지천을 물들이고
만산을 이고 선 설화
순수 그 자체
비죽비죽 솟은 암봉
한밤중에 쏟아져 내려
수선화와 인사 나누고
날개 돋아 승천한 우화정
순백의 풍경에 드리워진 채
웃음 밭 태우는 참회
잠들 시간이 없었다.
한 생각 쉬면
형상 없는 마음 따라 일어서는 화두 하나
꼿꼿하게 서 있는 금송金松처럼
미소 머금고 전신을 떨고 있다
두 손 모아 합장하면
해가 되고 달이 되어
아무도 어디에서 올 길 모르는데
나만 홀로 간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장군 피빛 서린 가슴
이승에서 저승 가는 길
그 길을 넘어 녹두꽃을 피웠네
* 『혜향문학』 2022년 상반기호(18호)에서
* 사진 : 관음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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