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폰 어머니
힘든 시집살이도 눈치코치로 넘겼다는
세상이 암만 변해도 살아갈 수 있다는
팔순의 무딘 손가락 신세계를 만난다
경로당 고스톱보다 배움에 더 목마르던,
진분홍 립스틱에 학사모 쓴 노인대학생
프로필 차렷 자세가 한 그루 나무이다
살아 갈 앞날들이 휴대폰 속 풍경이면,
큰 공부 못했어도 삶은 늘 용수철 같아
스윽 슥, 엄지손가락 행복을 밀고 있다
♧ 아름다운 역설
엄동을 지나고도
그 무슨 위법으로
당연히 결백하대도
속수무책 묻히던
겨울 무,
꽃대 올리는
안간힘을 보아라
♧ 줄
충전기 찾으려다
불쑥 나온 마른 탯줄
삼십여 년 서랍 안쪽
꽁꽁 숨겨 뒀었네
일 인치 끊어진 고무줄
당길 수 없어 아팠네
줄이란 줄 다 없애도
소통하는 무선시대
연줄 핏줄 끊어내도
다시 뻗는 넝쿨손처럼
원뿌리 소유권 찾아
교신 한번 해볼까
♧ 검버섯, 그 황당함에 대하여
내 몸에 씨로 쓸
균이 아직 남았나
기둥은커녕 받침돌 하나
괴어 본 적 없었는데
어쩐담!
흰 분칠해도
광대뼈가 승천하네
어머니, 또 어머니처럼 인생꽃이 필 땐가 봐
길 잃고 헤맬만한데 얼룩얼룩 슬몃 피어,
선블럭 마스크 팩도 거부하는 내력인 걸
그래도 나를 딛고
살겠다고 꿈틀대니
여태껏 객식구 달고
살아본 적 없지만
어떻든
애써볼란다
볼연지 찍어 바르듯
♧ 운주당 수선화
꽃이 피는 뜻은 꽃만이 알 일이다
달빛에 글을 읽던
수선*의 마음일까
정결한
꽃의 권리는
낮은 데로 향했다.
소명인 듯 운명인 듯 얼지 않는 향기였다
첫,
그 이름만 한
걸음걸음 희망이길래
은반의
서릿발조차
가슴으로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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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선각자이며 애국지사인 우인 고수선을 말함.
*한희정 시집 『목련꽃 편지』 (한그루, 2022)에서
* 사진 : 산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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