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윤행순 시집 '간호사도 가을을 탄다'의 시조(2)

김창집 2022. 6. 29. 08:21

 

성세기 해변

 

어릴 적 이모 따라 처음 와 본 이 바다

막내를 분가시키고 남편과 또 와 본 바다

성경을 필사하다가 찢어버린 파지 같다

 

 

 

코로나 속, 첫울음

 

찔레꽃은 피어서 어디로 가려는가

목소리만 들리고 사람은 안 보인다

공원의 한쪽 귀퉁이 떠서 도는 마스크

 

산통이 시작된 걸까 병원 찾은 내 딸아

감염증이 번져서 면회도 금지라며

첫 손녀 첫울음보다 안쓰러운 아이야

 

카톡카톡 전송된 꼼틀꼼틀 사진 한 장

어쩌랴, 낸들 어쩌랴 이 세상을 어쩌랴

애섰다, 애썼다 밖에 무슨 말을 더 하랴

 

 

 

왼손잡이

 

오랜만에 아들과 저녁상에 앉는다

왼손잡이 젓가락질 내 옛날 첫사랑 같다

이제야 휘파람 하나 슬그머니 흘려본다

 

청주 지나 대전으로 그리고 논산으로

그때도 그 발자국 내 가슴에 찍혔었다

설레는 싸락눈처럼 면회를 가고 있다

 

군사우편 소인 찍힌 그 군바리 이 군바리

오늘은 둘 만의 시간 등 돌리기 참 좋은 밤

어느 새 외박의 밤이 저리 훌쩍 자랐다

 

 

 

멀거니

 

아침엔 햇살 몇 점 저녁에는 함박눈

버스도 택시도 다 보내놓고 혼자다

제주시 버스터미널 앉아 있는 할머니

 

바리바리 저 보따리 아들 집 가는 걸까

창 자국 확인해야 부활을 안 도마처럼

슬며시 차를 돌려서 그 앞에 세워본다

 

남편 직장 따라 섬 몇 바퀴 떠돌다

오늘은 서귀포 그 어디쯤 헤매시냐

어머니

속울음 참고

한 번 불러보고 싶다

 

 

 

웬수

 

눈을 떠도 저 웬수

눈 감아도 이 웬수

정년퇴직 하고 나자 잔소리만 더 늘었다

저 애증

골이 깊어도

햇살에 눈부시다

 

 

              *윤행순 시집 간호사도 가을을 탄다(문학과사람, 202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