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세기 해변
어릴 적 이모 따라 처음 와 본 이 바다
막내를 분가시키고 남편과 또 와 본 바다
성경을 필사하다가 찢어버린 파지 같다
♧ 코로나 속, 첫울음
찔레꽃은 피어서 어디로 가려는가
목소리만 들리고 사람은 안 보인다
공원의 한쪽 귀퉁이 떠서 도는 마스크
산통이 시작된 걸까 병원 찾은 내 딸아
감염증이 번져서 면회도 금지라며
첫 손녀 첫울음보다 안쓰러운 아이야
카톡카톡 전송된 꼼틀꼼틀 사진 한 장
어쩌랴, 낸들 어쩌랴 이 세상을 어쩌랴
애섰다, 애썼다 밖에 무슨 말을 더 하랴
♧ 왼손잡이
오랜만에 아들과 저녁상에 앉는다
왼손잡이 젓가락질 내 옛날 첫사랑 같다
이제야 휘파람 하나 슬그머니 흘려본다
청주 지나 대전으로 그리고 논산으로
그때도 그 발자국 내 가슴에 찍혔었다
설레는 싸락눈처럼 면회를 가고 있다
군사우편 소인 찍힌 그 군바리 이 군바리
오늘은 둘 만의 시간 등 돌리기 참 좋은 밤
어느 새 외박의 밤이 저리 훌쩍 자랐다
♧ 멀거니
아침엔 햇살 몇 점 저녁에는 함박눈
버스도 택시도 다 보내놓고 혼자다
제주시 버스터미널 앉아 있는 할머니
바리바리 저 보따리 아들 집 가는 걸까
창 자국 확인해야 부활을 안 도마처럼
슬며시 차를 돌려서 그 앞에 세워본다
남편 직장 따라 섬 몇 바퀴 떠돌다
오늘은 서귀포 그 어디쯤 헤매시냐
“어머니”
속울음 참고
한 번 불러보고 싶다
♧ 웬수
눈을 떠도 저 웬수
눈 감아도 이 웬수
정년퇴직 하고 나자 잔소리만 더 늘었다
저 애증
골이 깊어도
햇살에 눈부시다
*윤행순 시집 『간호사도 가을을 탄다』 (문학과사람, 2022)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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