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서안나 시집 '새를 심었습니다'의 시(4)

김창집 2023. 3. 6. 00:31

*고흐와 테오의 무덤

 

반 고흐

 

 

젖은 침대 속으로 뱀들이 지나간다

생레미 정원의 해바라기가

개처럼 짖는다, 새가 외국어로

울고 간다

 

사물들은 무례하고 심술궂었다

발작을 하면 허파에서

미친 개구리들이 뛰어나온다

팔이 긴 인도원숭이가 창문을 삼킨다

 

테오에게 편지를 쓸 때

사람의 말을 하는 까마귀가 찾아왔다

고백할 것이 많아 오후가 무서웠다

감정이란 처음부터 상처였다

 

아몬드 꽃이 피면

젊어서 죽은 여자가 걸어 나왔다

아침마다 귀가 멀었다

 

그림자는 소음이다

등 뒤에 개구리들이 우글거렸다

 

 

*애월바다의 저녁

 

백 톤의 질문

 

 

뒤돌아보면

가을이었다

소주가 달았다

내가 버린 구름들

생강나무 꽃처럼 눈이 매웠다

 

고백이란

심장 근처에 불이 켜지는 것

그렇게 인간의 저녁이 온다

 

불탄 씨앗 같은 나를

흙 속에 파묻던 밤

죄 많은 손을 씻으면

거품 속으로 사라지는 두 손

 

어떤 생()은 어떤 눈빛으로

커튼을 닫고 밥을 먹고 비탄을 물리치나

 

깨진 중국 인형의 눈동자 속에서

울고 싶은 자들이 운다

죽은 꽃이 죽은 꽃을 밀고 나오는

사라지는 밤이었다

 

돌아누우면

물결이던

애월

 

 

 

()

 

 

그리울 테면 그리워보아라

뱀을 죽이면 비가 온다

 

누군가 나에게

현무와 주작을 아느냐고 말했다

물 수자를 쓰면

해변이 부서진다

 

저녁의 해변은 남은 사람의 것

나는 물결에 잡힌 사람

 

아버지 49제 날

나는 손가락을 베었다

붉은 별이 몇 개 떴다

 

아버지가 핏방울처럼 번져간다

몸에 별을 가두고

입술을 꼭 다물고 느리게 빛났다

아버지는 어디쯤에서 뒤돌아보실까

 

우리는 정녕 아름다웠던가

물에 발을 담그면

운명이란 바다를 다 가졌다는 것이다

더 춥고 싶었다

그리움은 물결치는 것이므로

 

 

 

앨리스의 사물들

 

 

3분에서 5분 동안 당신은 고장 날 것입니다

썩은 세계는 충분히 아름답지요

 

커피를 마시면 3분 뒤에 나는 커피 마신 사람이 된다

몸을 기울이면 빈 곳이 생긴다

식은 감정에 물을 주면 얼굴이 고장 났다

헬멧을 쓰면 우주에 온 것 같다

고음으로 노래를 부르면 개인은 비범해진다

 

일기장에 미친 토끼들이 뛰어온다고 적었다

강물 속에서 누군가 우리를 부르고 있다

어머니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오후였다

 

감정이란 감정 따위를 손톱으로 눌러 죽이는 것

그가 말했을까 내가 고개를 끄덕였을까

나는 여러 개이므로 여러 번 부끄러워진다

오늘 저녁은 내 얼굴에서 달아날 것이다

,별에도 봄이 온다라고 누군가 안부 문자를 보내왔다

몸을 기울이면 빈 곳이 생긴다, 손가락이 끈적거렸다

 

 

 

먼지 인간

 

 

나는 늙어졌다 젊어진다

누군가 새벽을 끌고 가고 있다

 

혼자라는 건

죄가 아니다

내가 나에게 도착했다는 것

누군가 앉았던 자리를 닦으면

먼지가 묻어있다

 

나는 오래전부터

먼지의 발로 유랑했다

고통은 왜 고체인가?

입술을 깨물면 아픈 저녁이 탄생한다

 

눈썹 짙게 그리고

먼지라고 발음하면

새벽의 질문은 거짓말인지 몰라

두 사람이 함께 울면 퇴적된다

누군가 삶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지만

나는 무언가 있을 거라고 중얼거렸다

 

세계는 은밀하고 아름다우며

새를 흔들면 지층이 만져졌다

친절한 영혼은 먼지 냄새가 난다

없는 손목이 내 얼굴을 만졌다

 

자욱하다

나는

나에게 운반되는 중이다

 

 

             *서안나 시집 새를 심었습니다(여우난골, 202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