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시 3] 누가 무거운 지구를 붙들고 있는가? - 임보
할아버지가 열네 살 손자에게 다시 묻습니다.
“우리가 붙어살고 있는 이 땅-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학교에서 이미 배워 알고 있지?”
“네, 지구의地球儀를 학교에서 보았어요.”
“이 지구가 얼마나 무거운 줄 아느냐?”
“상상할 수 없이 무겁겠지요!”
“그래, 59해 7000경 톤이라고 과학자들은 계산한단다.”
이처럼 무거운 땅덩이 지구가 하루에 한 번씩
스스로 도는 자전을 하고
1년 365일 만에 태양을 한 바퀴 도는 공전을 한다고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설명을 합니다.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 무거운 지구를 붙들고
돌리는 게 태양이구나.
그 태양이 지구만 그렇게 붙들고 돌리는 게 아니라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
아홉 개의 행성들을 다 붙잡고 돌리고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 힘을 지닌 존재냐?”
♧ 갈림길 – 정순영
생각하라
아파하고 슬퍼하다가
영원에서 영원 사이의 잠깐인
다시 돌아오지 못할 인생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죽음은 끝이 아니라 갈림길이다
감사하라
피 흘림의 제사로 얻은 생명은
인생이 죽어서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 태어나는 것임을
♧ 산본, 오뉴월 가로수 길 – 김동호
연초록 가로수 길이
진초록 터널로 바뀌었네
터널 속인데 웬 꽃이
이렇게도 많이 피었을까
장미 자목련 아카시아
모란 작약 조팝 이팝
층층나무 꽃, 오동나무 꽃
터널 속인데 웬 새들이
이리도 많을까 까치 비둘기
참새 콩새 쑥새 숲새
오목눈이 방울새
♧ 앉은뱅이 꿈 – 김이하
찬바람 가시면 가겠다
그러나 꽃소식에도 못 갔네
세상사 다 그러려니 하기엔
몸이 너무 무겁네
새벽 새소리에 깨어
잠시 멍하다가 까무룩 빠져드는 잠결
다시 허기에 깨어나 부스럭거리면
밖은 훤한 대낮인데
언제 다시 오고갈 수 있나
이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나 본들
지구 한 바퀴 돌아, 돌아오기에는
뒤에 깔린 그림자 너무 기네
♧ 냉장고 – 권순자
나의 별명은 냉장고
뜨겁고 지친 사랑은 급 냉동시켜
조금씩 꺼내 먹을게
팔랑거리는 꽃들의 무덤을
쓸어다가
가슴 깊숙이 얼려서
오래오래 붉은
꽃잎 채로 안고 있을게
씨앗을 얼음 가슴에
깊이 품고
천년 뒤에도 너를 닮은
나무를 낳을게
*월간 『우리詩』 3월호(통권 416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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