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월간 '우리詩' 3월호의 시(2)

김창집 2023. 3. 14. 01:27

 

 

로드킬 백수인

     -조장鳥葬

 

 

  가지산 보림사 너머 아스팔트 길 위에 한 마리 고라니 시신으로 놓여 있네 천장사天葬師인 늙은 라마승의 칼춤은 이미 끝났고 갈기갈기 찢어진 붉은 피 낭자한 시체만 하늘을 바라보고 있네 검은 상복을 차려 입은 새들이 조문하는 마음으로 주위를 돌며 지저귀네 푸드득 푸드득 날갯짓으로 멀리 날아가는 고라니의 영혼을 배웅하네

 

  이윽고 검은 새들은 고라니 시신 속에 들어 있는 가지산 골짜기 흐르던 파란 하늘 조각들을 뜯어먹기 시작하네 문득 고라니 시신에서 푸른 날개가 돋아나네

 

 

 

 

겨울, 말의 뼈 - 김완

 

 

돌 같이 딱딱한 가래는 말의 사리이다

묽은 가래는 아직 철들지 못한 떠돌이 말

 

말의 뼈 같은 가래 한 조각 뱉어내자

가슴이 뻥 뚫리고 숨쉬기가 편해진다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기침은 말의 절규

한겨울 고여 썩지 말라는 영혼의 죽비이다

 

숨죽인 붉은 문장 불씨로 남겨두어

잉걸불로 활활 타오를 봄을 기다리자는 말

 

 

 

 

못 박는 사내 민구식

 

 

골고다 언덕을 짓는 사내

오늘도 쇠막대기 십자가를 지고 계단을 오른다

그의 업은 위태로운 상승

고도는 점점 높아지고 구원은 희박하다

좁은 너비를 회전할 때마다 축의 변곡점은 늘 충돌한다

얇은 널빤지가 휘청일 때마다

허공은 잡히지 않고

어지러운 세상을 내려다 볼 때마다

전지적 눈으로 허허 웃지만

그의 허리춤 주머니에는

을 매달아 혼내 주고 싶은

못이 가득하다

공간에서 공간을 건너는 걸음마다

못 박는 소리

사내도 어딘가에 박히고 싶은지

입에 문 못 하나가 시큼하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 김종욱

 

 

시간은 삶의 고독만큼 길어지고

죽음을 이해하는 사랑만큼 지워진다

새들이 살다 벗어 놓고 날아갔다

동트고 빛이 새는 거대한 파란 지붕 틈새에서

각시투구꽃처럼 피어나는 보랏빛 새벽

붉은 피와 푸른 눈물이 뒤섞인 포도주,

 

고슴도치의 눈물도 가시

가시나무숲

가시 왕관

개나리 꽃씨는 눈송이 녹은 길 따라 피어나고

겨울을 추억하는 봄바람마다 실려 온다

 

드러나면 되는 것들도 감추어지고 만

계속 흔들리는 검은 물결 아래서

약속은 어겨지라고 여겨지는 듯

계속 흔들리는 검은 물결 아래서

이성과 언어는 영원히 완성되지 못할 것이다

검은 물결 아래서 동시에 출렁대는

시작과 끝의 혼재와 혼란과 혼돈 속에서

사랑은 흩어져 보이지가 않는 것 같다

눈이 멀었나 온 세상이 어두워졌나

 

그러나 그 암흑 한가운데에서도

영원한 순간은 유리로 된 섬광으로 깨지면서

빛나는 발자국으로 여기저기 찍히고 있었다

그 발자국의 별들이 왜 피투성이 발로

그 밤을 그토록 걷고 걷는지는

드러나도 드러나도 감추어진 수수께끼

현재를 빛내는 과거처럼 멀고 멀어도

눈 뜨고 동 터오면 다시 지워지는 미래라도

 

세계는 필연적으로 고독과 싸우는

사랑

검은 물에 어른거리는 섬세한 물비늘에서

굴절되던 신은 하늘 깊은 물속 별과도 같고

어느 예술가의 삶과 죽음처럼 빛나는 것도 같다

 

신은 스스로 고독을 창조하고

고독과 싸우는 사랑을 발명한다

그렇게 지워진다 경계는……

삶의 죽음을 이해하는 만큼

길어지고 그 고통만큼 꺾인 날개도

날개로 여겨지는 약속의 새가 어긴

시간과 공간의 제약만큼

 

 

 

 

살구나무 옆에서 불을 피우며 김성중

 

 

장독대 앞 살구나무 옆에서

곡정보에서 주워 온 나무를 태운다

 

땔나무는 가끔 비를 맞기도 했는데

장을 달일 때 조금 태웠고

코로나 퇴치를 위해 불을 피우기도 했다

 

내 마음이 울적할 때

처마 밑에 쌓아둔 땔나무를

드럼통을 잘라서 만든 화덕에 넣고

불을 피우며 불기운을 맞으며

냉갈 냄새를 맡으며 활기를 되찾곤 했다

 

살구나무 옆에서 불을 피운다

내 마음의 찌꺼기를 태운다

이 세상의 불합리를 태운다

세상의 평화를 기원한다

 

 

 

                                   *월간 우리20233월호(통권 416)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