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장한라 시집 '철원이, 그 시정마'의 시(5)

김창집 2023. 3. 12. 00:02

 

 

불란지* 프러포즈

 

 

청수곶자왈 웃뜨르 빛

한여름 숲 속

고요마저 잠이 든

 

돌담 사이 지상의 별들

여린 바람의 소리로

 

우리 함께 꾸미고 이 밤을

속삭이려는데

 

붙어버린 입술

초록빛 반디의 탱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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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란지 : 반딧불이의 제주어.

 

 

 

 

들렁모루*

 

 

서귀포시 서홍동 언제나 그곳에서

자신의 침묵 안에 뜨거움을 억누르고

 

긴 시간 흔들리지 않고

어둠을 밀어내며

 

때로는 상처 안의 길

자취를 감추었다

 

제주가 낳은 섬들 눈 아래 젖어 있듯

가늠키 힘든 마음 길을 내어버리면

 

끝끝내 허물어뜨리고

뼈만 남은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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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렁모루(제주어) : 속이 빈 바위가 있는 언덕.

 

 

 

 

아랑졸디 물장올*

 

 

살면서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다고

늦어도 괜찮다고

질토래비 기다려주는 길을 간다

 

고요히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의 발자국 내려다보며

 

물장오리 산정화구호

개서어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도

엄숙함을 마주하고

설문대할망을 그려본다

물의 깊이 헤아리려 용궁으로 가셨나

 

영험한 기가 흐르는

기단석 송이고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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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졸디 물장올 : 알아서 좋을 물장오리.

 

 

 

 

종달리 돈지할망당

 

 

고통도

지켜보면

삶의 뿌리가

된다

 

소금바람

휘날려야

푸른 바다

봄 오리니

 

등 굽은

사스레피나무

한 몸 되어

다독인다

 

 

 

 

고내 삼춘

 

 

비린 비바람

마르지 않은 고무옷에

파도의 높낮이 물살을 가늠하는

상군해녀의 그렁한 눈망울

 

물질은 벗이 이서야 허는디

허여지민 허곡 못 허민 말주

게난, 정해도 살아지난

 

건져 올린 물숨의 시린 날들

테왁 망사리에 담아 돌아오는

올레길도 부표 같다

 

때론

돌담 사이에 걸어놓고 싶은 날들

밥이 된 약봉지 들고

 

물질은 벗이 이서야 허는디

허여지민 허곡 못 허민 말주

게난, 정해도 살아지난

 

 

          *장한라 시집 철원이, 그 시정마(도서출판 상상인,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