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오승철 시조집 '다 떠난 바다에 경례'의 시조(1)

김창집 2023. 3. 15. 01:54

 

시인의 말

 

 

  고구려 시대에도 해녀들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제 대물리며 사천 년간 섬을 지켜온 그들이 퇴장하고 있습니다.

  자욱했던 숨비소리도 사라지고 불턱의 잔불들도 꺼져가고 항일운동을 펼쳤던 그 기개만 역사 속에 남았습니다.

  상군해녀였던 어머니도 떠나셨습니다.

 

  저 텅 빈 바다에 무엇을 바칠까 하다가 그냥 거수경례나 하고 돌아갑니다.

 

                                                                 2023년 봄기운 속에서오승철

 

 

 

고추잠자리. 22

 

 

- 그래, 그래 알겠더냐

날아보니 알겠더냐

 

- 그래, 그래 알겠더냐

매운맛을 알겠더냐

 

한 생애

그리움으로

붉어보니 알겠더냐

 

 

 

 

다 떠난 바다에 경례

 

 

둥실둥실 테왁아

둥실둥실 잘 가라

낮전에는 밭으로 낮후제는 바당밭

누대로 섬을 지켜온

그들이 퇴장한다

 

그만둘 때 지났다고 등 떠밀진 말게나

반도의 해안선 따라

바다 밑은 다 봤다는

불턱의 저 할망들도

한때 상군 아니던가

 

한 사람만 물질해도 온 식구 살렸는데

어머니 숨비소리

대물림 끊긴 바다

숭고한 제주 바당에 거수경례 하고 싶다

 

 

 

 

그리운 관명

 

 

건들지 말아야 할 건 건들지 말아야지

멀쩡한 세상 한켠 뭘 자꾸 훔쳐보나

기어이 동티난 게지 멱살 잡고 가는 눈발

 

이 섬의 구석구석은 신의 영역이지만

귀신들도 딱 한번 줄행랑칠 때있다

어사또 출두야같은 관명이란 말 앞에선

 

새마을 기 펄럭펄럭 재래식 변소개량

누가 내 가슴에도 관명이라 붙여다오

하룻밤 하룻밤이라도 너 없이 살고 싶다.

 

 

 

 

칠십리

 

 

세상에 등 내밀면 안마라도 해주나

해마다 점점 낯선 서귀포 솔동산길

찻집에 몰래 온 섬도 뿔소라로 우는 저녁

 

 

 

 

축하하듯

 

 

어느 마을에나 정자가 있고 공론의 장이 있다

서너 명만 모여도 웃음꽃은 피어나고

망오름 장끼소리도 까딱하면 소환된다

 

하루는 어머니도 이 논의 속에 올랐다지

저 하늘 별 하나 더 늘었을까 줄었을까

가신지 얼마쯤 돼야 고향에 별로 뜰까

 

하늘은 하늘대로 우릴 내려 보나 보다

하늘나라 입학을 축하하는 것인지

가끔은 마을 밖으로 별똥별도 쏘아댄다

 

 

                             *오승철 시조집 다 떠난 바다에 경례(황금알,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