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의 말
고구려 시대에도 해녀들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제 대물리며 사천 년간 섬을 지켜온 그들이 퇴장하고 있습니다.
자욱했던 숨비소리도 사라지고 불턱의 잔불들도 꺼져가고 항일운동을 펼쳤던 그 기개만 역사 속에 남았습니다.
상군해녀였던 어머니도 떠나셨습니다.
저 텅 빈 바다에 무엇을 바칠까 하다가 그냥 거수경례나 하고 돌아갑니다.
2023년 봄기운 속에서… 오승철
♧ 고추잠자리. 22
- 그래, 그래 알겠더냐
날아보니 알겠더냐
- 그래, 그래 알겠더냐
매운맛을 알겠더냐
한 생애
그리움으로
붉어보니 알겠더냐
♧ 다 떠난 바다에 경례
둥실둥실 테왁아
둥실둥실 잘 가라
낮전에는 밭으로 낮후제는 바당밭
누대로 섬을 지켜온
그들이 퇴장한다
그만둘 때 지났다고 등 떠밀진 말게나
반도의 해안선 따라
바다 밑은 다 봤다는
불턱의 저 할망들도
한때 상군 아니던가
한 사람만 물질해도 온 식구 살렸는데
어머니 숨비소리
대물림 끊긴 바다
숭고한 제주 바당에 거수경례 하고 싶다
♧ 그리운 관명
건들지 말아야 할 건 건들지 말아야지
멀쩡한 세상 한켠 뭘 자꾸 훔쳐보나
기어이 동티난 게지 멱살 잡고 가는 눈발
이 섬의 구석구석은 신의 영역이지만
귀신들도 딱 한번 줄행랑칠 때있다
“어사또 출두야” 같은 관명이란 말 앞에선
새마을 기 펄럭펄럭 재래식 변소개량
누가 내 가슴에도 관명이라 붙여다오
하룻밤 하룻밤이라도 너 없이 살고 싶다.
♧ 칠십리
세상에 등 내밀면 안마라도 해주나
해마다 점점 낯선 서귀포 솔동산길
찻집에 몰래 온 섬도 뿔소라로 우는 저녁
♧ 축하하듯
어느 마을에나 정자가 있고 공론의 장이 있다
서너 명만 모여도 웃음꽃은 피어나고
망오름 장끼소리도 까딱하면 소환된다
하루는 어머니도 이 논의 속에 올랐다지
저 하늘 별 하나 더 늘었을까 줄었을까
가신지 얼마쯤 돼야 고향에 별로 뜰까
하늘은 하늘대로 우릴 내려 보나 보다
하늘나라 입학을 축하하는 것인지
가끔은 마을 밖으로 별똥별도 쏘아댄다
*오승철 시조집 『다 떠난 바다에 경례』 (황금알, 202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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