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월간 '우리詩' 3월호의 시(3)와 얼레지

김창집 2023. 3. 18. 07:21

 

 

나무의 귀 정순영

 

 

  나무는 가지마다 귀가 있다

  가지가 많은 나무일수록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깊은 계곡의 옹달샘에 숨어서 반짝거리는 윤슬의 빛살소리에서부터

  유유히 흐르는 강의 깊은 숨소리와 쓸쓸한 들판 한 가장자리에 홀로 피어 흔들리는 풀꽃의 가녀린 목소리와 황량한 도회 길거리 진눈깨비 속에서 종이를 주워 모은 돈주머니를 나보다 더 가난한 이웃에게 주라는 꼬부랑 할머니의 마음 소리까지 소중한 소리는 낱낱이 들어서 생명책에 기록한다

 

 

 

가장 큰 죄 김동호

 

 

계절 바뀔 때마다

내 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한소리가 있다

 

어김없이

또 보내주시는

이 새 아름다움,

이것 모르는 죄보다

큰 죄가 있을까

 

 

 

 

눈의 성 이상호

 

 

눈앞에 버티고 있는 주인은 당신인가요

쌓인 눈을 밟다가 가까이서 마주 선

불빛만 거울 같은 곳, 창가에 아롱이는 꽃

 

풍문처럼 울렁이는 소묘로 다가서면

집시들의 자장가가 희끗하게 달려와서

방마다 당신의 숨결처럼 잠겼다가 달아나는 곳

 

파묵의 소설 같은 하얀 성이 떠오르지요

뚜벅뚜벅 걸어서 따라가고 싶을 만큼

조촐한 시야 밖으로 가루 눈발이 쌓이는 곳

 

 

 

 

그리움 유정자

 

 

누군가 내게 그리움의 빛깔을 묻거든

저 하얗게 흩어지는 눈송이처럼

잠시 바람 속을 스치다 스러지는 은빛 섬광 같은

그 찰나의 빛깔이라고 말하고 싶다.

한평생 유리알 같던 엄마의 의식에도

먹구름 끼어 혼돈의 고갯길을 넘으실 때

찰나의 눈빛으로 전해 주신 그 맑고 깊은 사랑

그 찰나의 순간 속에서 내 볼을 쓰다듬고 다시금

깊은 잠에 빠지셨던 엄마

휠체어를 밀던 병원 복도

의식 없던 엄마의 초인적 힘이 빚어낸

은빛 섬광,

수많은 언어가 함축된 그 빛깔이 바로 오로지 나만이 알 수 있는

그리움의 빛깔이라고 말하고 싶다.

 

 

 

 

모든 시 김종욱

 

 

별로 태어나고

꽃으로 빛나고

모든 생명으로 피어나다

사람으로 시들어갔다

 

 

 

                      * 월간 우리20233월호(통권417)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