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귀포 칠십리
-〈서귀포 칠십리〉란 노래를 작사한 조명암에 대해
그게 어디 숫자여?
부르고픈 이름이지
백 리는 너무 멀고
오십 리는 좀 짧다고?
‘서귀포 칠십리’란 말 내뱉고 간 사람아
어디서 어디까질까, 서귀포 칠십리는
섬들을 한 바퀴 도는 그 거리가 그쯤이겠고
이 땅의 그리움 찾아 나선 길도 칠십리
그래! 어떻던가 거기에는 있던가
삼팔선 넘어서면 칠십리더냐, 천 리더냐
사람아, 칠십 리란 말 흘리고 간 사람아
♧ 오조리 포구
가을 햇살 몇 줄기 갯벌로 기어 나와
보글보글 밥을 짓는 오후 네 시 오조리 포구
비린내 폴폴 날리듯 달랑게 같은 저녁이 온다
그렇게 어느 길목 돌아 나온 겟메꽃처럼
통통통통 발동선도 오늘 밤 바다에 들면
저마다 꽃이 아니라 우성강 갯메꽃 아니랴
온종일 발길들도 뜸하디뜸한 바닷가
그리운 그 이름마저 뱉지 않고 그냥 가리
자리젓 고린내 같은 고백 한번 없이 가리
♧ 서귀포 극장
전쟁 난리 멎은 이 땅 누가 세운 극장일까
허기는 밥만으론 채울 수 없다는 듯
칠십리 섬들도 불러 요리조리 앉혀 놨다
산남지역 명동은 서귀포 솔동산길
주연배우 옷들은 그날부터 유행을 타고
때때로 유랑극단이 유랑의 세월 달래준다
개관한 지 육십 년 누가 그 문 닫았나
이름도 서귀포극장 겉모습도 그대론데
그 옛날 그들의 뒷모습 쓸쓸함이 만져진다
♧ 서귀포 한쪽
눈발이 펏들펏들
서귀포 동문로터리
시외버스 끊겼지만 국밥은 말고 보자
택시비 그게 문젠가 ‘비틀’ 길을 메고 간다
2022년 12월 23일 오후 9시 50분
이 길이 십 년 후면 나를 기억해 줄까
변변한 시 한 편 없이 찾아온
서귀포 한쪽
♧ 사천 년 물질을 마치는 저 바다에 무엇을 바치랴
세계 최강 제주해녀라는
그런 말 하지 마라
살기 위한 몸부림
자맥질일 뿐이다
꽃 대신
눈물이라도
뜨겁게 바치고 싶다
*오승철 시조집 『다 떠난 바다에 경례』 (황금알, 202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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