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천 년 해녀물질 끝나는 바다에서
한반도 해안선 따라 굽이굽이 돌아들면
어디서나 고무옷 입고 늙어버린 바다가 있다
이어도 꿈을 그리며 건너온 저 바다들
삼짇날 원정물질 추석이면 돌아간다
다 떠난 바다에도 물결소리 숨비소리
더러는 육지총각과 눈이 맞아 눌러산다
사천 년 대 이은 물질 이제 비록 끊긴대도
사람 서넛 사는 섬에 데닥데닥 홍합처럼
사투리 제주사투리 끈질기게 붙어산다
♧ 모슬포 절울이오름
절울이 외로운 날은 사람들도 외롭다
한반도의 끝자리 바람받이 총알받이
가파도 마라도마저 선명하게 뜨는 날
아무렴 왜 안 그러랴 이 몹쓸 모슬포 세월
신축교란 백조일손 그런 말만 들어도
부르고 싶은 이름들 떠돌지 아니할까
그래 안 부르마 다시는 안 부르마
오름 끝 벼랑 끝을 후벼 파는 파도 소리
아무리 잔잔한 날에도 잠 못 드는 절울이오름
♧ 그리운 삼포
성산포에서 모슬포 그 중간에 서귀포
어느 항구가 더 그립냐고 묻지 마라
윷판도 끝난 자리에 가을 저녁 빗소리
♧ 2022년 첫눈
망오름 앞뒤로 품은
내 고향과 가족묘지
허랑방탕 꿩 한 마리
산소에 뭣하러 왔나
아버지 어머니 생각
더 못 버텨 내리는 눈
♧ 모슬포 오일장
그게 땅 팔자지 어디 사람 팔잔가
한반도 최남단의 도시 여기서도 장이 선다
누구도 ‘못살포’란 말 입에 담지 않는다
마라도 가파도도 장날은 기억한다
산마을 구억에서도 길들이 걸어오고
이따금 종지윷 판에 바다도 들썩인다
갈치 세 마리와 도너츠 한 봉지
게도 갯강구도 장꾼처럼 돌아들고
섬들도 국밥집 근처에 아예 눌러앉았다
*오승철 시조집 『다 떠난 바다에 경례』(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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