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 봄에 피는 꽃은 – 강영순
이른 봄 살을 에는 바람
눈물 머금고
입술 앙다물고
꿈결같이 피어나는 저 꽃은
기특하다 할까
애처롭다 할까
밝고 맑은 영혼
구름 없는 하늘
꽃잎에 어리고
얼음장 밑 개울물
소리 내어 흐르는데
꽃 피우는 마음
꽃 보는 눈길
세상은 다시 환해져
새봄 길을 재촉하네
♧ 뚝배기 받침대 – 국중홍
몸을 사를 듯한
뜨거움 받아 안고
시퍼렇게 섰던 날은
시나브로 까맣게 타버렸다
촘촘히 엮은 왕골
검은 화상 속에 비친
당신의 어깻등
뭉그러져, 더는
태운 것도 없다
여섯 숟가락 들락거리는
끓은 뚝배기 아래
아버지 몸이 타들고 있었다
♧ 세설원에서 – 권달웅
귀양 가듯 한여름 담양에 갇혔네. 뒷산 금강송 숲에 내리는 비가 한 사흘 아무것도 듣지 않은 내 귀를 적시네. 간밤에 불어났던 계곡물이 다시 조용해지네. 나도 저 낮은 물소리에 실려 먼 강을 따라가고 싶네. 불꽃같은 명옥헌 배롱꽃 다 떨어지고 나면 강물에 굴러온 내 험한 삶 휜 돌멩이처럼 드러나겠는가. 하안거하듯 한여름 세설원에 들어앉았네. 뒷산 금강송 숲에 내리는 비가 한 사흘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내 혀를 적시네.
♧ 수양버들 - 김귀녀
천안으로 가는 길목에도
단대 앞 호수에도
수양버들
수양버들이 늘어져 바람에 날린다
아침 이슬에 머리 감고
해가 뜰 무렵에는
누가 와서
살랑살랑 버들을 빗어준다
하교 길 소녀들이 그 곁을 지나간다
♧ 초롱꽃- 김내식
눈앞이 어두워야
별이
보이고
마음이 어두워야
신을
찾듯이
마음속 촛불 하나
돈에
꺼지고
산비탈 초롱꽃이
나를 밝힌다
* 계간 『산림문학』 2023 봄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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