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월간 '우리詩' 3월호의 시(5)

김창집 2023. 3. 28. 09:07

 

 

빛나는 권순자

 

 

추위가 바람결에 출렁거렸어

빛이 부서져서 어두운 방향으로 녹아들고

소리들이 굴렀어

 

느티나무 잎은 말라서

낯선 기억처럼 떠돌았어

깨어져 버려서 허물어져 버려서

 

떠도는 몸이 유리 조각처럼 빛났어

아직은 살아있어 누군가가 속삭였어

 

찌그락 째그락

소리를 내는 부서진 몸이

무서웠어

뾰족하게 살아서

뾰족하게 빛나는

입을 다물지 않는 소리는 멈추지 않고

깨지면서 더 맑은 소리로

공기를 갈라서 시원했어.

죽는 건 살점이 아니고

사는 건 어둠이 아니고

 

빛나는 소리였어

 

 

 

 

생의 등선 이상호

 

 

무심코 뱉은 말이 빈집처럼 허허로워

물수제비뜨던 날은 어둠 속에서 꽃 피었다.

해질녘 뒷모습들이 어둑어둑 가라앉고

 

물 위로 흐르는 것 어둠만이 아니어서

몸 누일 안식처를 잃어버린 철새들이

밤마다 소금별처럼 반짝이고 있는 강가

 

버린 것들 생각나서 물뱀처럼 돌아오니

물가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모여들었다

제 안을 꿈틀거리는 건 허름한 생의 등선

 

 

 

 

2월의 겨울 정봉기

 

 

가고 오는 길에서

오늘 내일을 맞이하고.

푸르렀던 어제는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회한으로 남아

더러는 아쉬움에 눈에 밟히기도 하는데,

한때 어린아이였던 노년은

네 바퀴 손수레에 기대어 해질녘을 넘는다.

흘러가는구나!

흘러가나 보다.

흐름은 빛에 실려 긴 숨을 쉬며 굽이치다가

오후의 빛깔로 물결 아래 잠긴다.

등이 굽은 조각달도 바람의 냄새에 실려 가고,

꽃이었던 향기의 시간에 등을 내어 주던 휴식은

멈춘 의자에 앉아 2월의 겨울로 지고 있구나!

 

 

 

 

우산 없이 정재원

 

 

  눈송이 슬리퍼를 끌고 그 집으로 가고 싶다

 

 

 

 

홍매화 위인환

 

 

바람의 염불

 

산 부처가

 

연줄을 끊는 일

 

목탁의 번뇌

 

붉은 법의를 걸친

 

면벽 수행 비구니

 

화병花病 도지고 있다

 

 

 

                           *월간 우리20233월호(통권417)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