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서안나 시집 ‘새를 심었습니다’의 시(7)

김창집 2023. 3. 30. 00:35

 

 

진흙 연습

 

 

눈을 감으면

한 사람의 영혼과도

마주치지 않으며

 

내 안에

진흙 뼈와 진흙 감정이

고여 있지 않으며

 

진흙은 사람을 쉽게 버리며

진흙은 찰지고 고요하고

아름답지 않으며

 

비를 맞으면

내 몸에서

무너진 풍경이

다시 무너지지 않으며

 

나는 진흙 입술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진흙 입술로 노래하지 않았으므로

진흙 입술은 배반을 만들지 않았으므로

 

진흙의 두 손을 버리지 않았으며

진흙 피가 쏟아지지 않았으며

진흙 심장이 금이 가지 않았으며

내 눈에서 짐승이 얼굴을 내밀지 않았으며

 

진흙 입술은

칼로 손목을 그은 자처럼

두 팔의 영혼이 되지 않으며

 

사막이 지나가지 않고

불타는 밤이 만져지지 않고

진흙이 진흙을 끌고 오지 않고

 

다 읽을 수 없는

진흙 얼굴은

 

 

 

 

새라는 통증

 

 

새는 내 눈에만 보이는 통증

 

누가 죽은 새를 내 머리 속에 넣었나

나는 늘 길을 잃었다

 

새에 집중하면

화요일은 죽은 사람의 기분

추한 자들도 슬픔 속에선 가인이 된다

 

새는 한 사람의 저녁에

느리게 도착하는 감정

 

새의 첫 장을 펼치면

다정의 뒷면

구겨도 펼쳐지는 새는

당신의 밤에 가깝다

 

이 빈약한 저녁은 어디서 오는지

새의 밤이 달려온다

그대와 나는 등을 맞대고 조금 다정하다

이젠 골목에 부딪히지 않아도 될까요

그러니 새를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새는 어둠 속에서 뱀을 꺼내는 마술

아직 죽지 못한 것들의 눈빛을 만지는 것

 

잘 살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사월의 질문법

 

 

사월은 무엇입니까

물에 젖습니까

입니까

톱니바퀴입니까 익명성입니까

경찰입니까 질문입니까

 

3백 번 질문해도

인간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알약을 삼키면

왜 녹슨 철봉 맛이 날까요

사월에는 왜 꽃이 더 아름다운가요

씨발이라는 말이 자꾸 생각납니까

 

사월은

왜 검정 같은 것이 만져집니까

지울수록 빛이 됩니까

뭉클하고 끈적거립니까

 

불쑥

질문처럼

내 손을

움켜잡습니까

 

 

 

 

마스크

 

 

얼굴은 실행하는 것이다

나의 세상은 눈동자만 남았지

 

턱을 지우고 코와 입술과

뺨을 지우면

마스크

 

내가 확장 돼

마스크를 쓰면

세상의 상처가 다 보여

 

마스크는 나의 의지

모두 아픈데 모두 웃었어

의사가 말했지

실패가 가장 완벽한 치료법이라고

 

실패한 나를

마스크 속에서 숨겨둘게

외부를 번역하면 바이러스 맛이 나

 

마스크 속에

내가 되고 싶은 내가 있어

미소가 부딪쳐

당신이 버린 얼굴이 부딪쳐

 

마스크는

나에게 집중하는

표정의 기술

 

나는 표정이 많아

나는 출구가 많아

 

 

 

 

진흙 나무

 

 

숲은 가끔 다정하다

나무는 내가 아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진흙 얼굴을 쓰고 놀았다

내 입에서 씨앗들이 쏟아졌다

뿌리가 길어 나는 자주 넘어졌다

나무를 만지면 표정이 있다

 

흙 묻은 내 손바닥에

누군가 그려놓은 퍼져가는

숲의 지문

 

흙 맛이 났다

갈비뼈를 버린 사람이 앉아 있다

아플 때 나는 너다

통증을 사랑했다

 

죽은 나뭇가지를 던지면

짐승이 달려오는

진흙 나무 속에서

너는

크고

사납다

 

 

 

 

프라하, 스타일

 

 

여행자는 이국적으로 밤을 발견합니다

 

잠시 나를 떠날게요, 프라하

불타는 성당과 여행용 흰 손을 들고, 프라하

 

여행은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기술

내 눈동자 안의 국경을 열어보는 것

 

국경을 넘을 때면

이민자의 표정이 됩니다

여행자의 수첩에는 국경의 수칙과

가난한 아이들의 허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프라하, 불탄 성당 주변을 걸었습니다

여행객과 여행객이 부딪쳐 국경이 탄생합니다

오후 430

성당 종탑을 깨고 불타는 말을 달려 나오는

중세의 녹슨 기사들

불탄 성당이 나를 뚫고 지나갑니다

 

불에 탄 영혼과

낮은 저녁과 사소한 용기들

검은 눈과 검은 손바닥으로 올리는

프라하의 불타는 젖은 기도

고백은 삐걱거리는 금속성에 가깝습니다

 

기도란 나의 흰 뼈를 뽑아

당신과 나의 국경을 허무는 일

 

프라하에서 프라하를 버립니다

 

엽서를 씁니다

프라하는 이별하기 좋은 성분

구름을 고독으로 번역합니다

모든 것들은 먼지에서 왔으니

나는 무엇인가 되지 않으려 합니다

까맣게 탄 두 발로

가고 싶은 곳까지 가볼 겁니다

 

여행자는 이국적으로 밤을 발견합니다

 

 

 

                 *서안나 시집 새를 심었습니다(여우난골,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