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월간 '우리詩' 5월호의 시(1)

김창집 2023. 5. 11. 00:28

 

 

바람꽃 - 임미리

 

 

천지에 바람 소리 가득한 날

꽃잎, 소식 한 줄 전하네요.

바람 불어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부드러운 꽃잎 사이로

한 움큼의 향기 붉어져

그대에게 살며시 스며드네요.

나를 바람꽃이라 불러주세요.

세월 흘러도 잊지 않을 향기처럼

꽃의 화신으로 남을게요.

그대에게 영원히 머물 수 있기를

세상에 흔들려 형체를 잃어버려도

온몸으로 그대 감싸 안으며

천년인 듯 향기롭게 피어나기를

바람이 불러주는 노랫소리

천지가 온통 바람꽃이네요.

 

 

 

 

인디언 질경이 장문석

 

 

질기고 독하다는 말,

빈말이라도 하지 마세요

당신들이 우리 땅 빼앗았잖아요

짓밟고 또 짓밟았잖아요

수수만년 사원이자 신전이었던

, 그 영험에 불을 지르고

사냥하듯 총질까지 했잖아요

숲의 정령들이 구천을 떠돌고

별들의 춤사위가 고꾸라졌어요

그 주검에, 그 죽음의 터에

당신들은, 당신들의 집을 지었잖아요

은혜는 바라지도 않아요

원주민이라는 말,

연민인 척하지 마세요

물려받은 혈통은 눈물이라서

좁은 틈새일망정 날선 뿌리를 내리고

일단은,

악착같이 버티는 것뿐이에요

 

 

 

 

손에 손잡고 나병춘

 

 

손과 손 인간의 말, 눈과 눈 나무의 말

 

꽃과 나비 사랑의 춤, 손과 발 우주의 몸짓

 

머리도

허리 다리도

모두 다 혼불이 되어

 

 

 

 

쫄지 마 괜찮아 정성수

 

 

사는 일이 팍팍하다고

사랑이 힘들게 한다고

투덜대지 마

스쳐 가는 것은 바람이야

흘러가는 것 또한 강물이지

한 번 왔다가 홀로 가는 것

그게 인생이잖아

낯선 사람이

옆구리를 쿡쿡 찔러대도

눈을 깔고 바라봐도

길을 가다가 무릎을 꿇어도

쫄지 마 괜찮아

너는 할 수 있어 뭐든지

잘 할 수 있어

상처도 꽃잎이야

 

 

 

 

거미집 임영희

 

 

전 재산이 오두막 한 채뿐인데

손바닥만 한 마당 곳곳에

정교한 그물 집을 지어놓고

제 땅이라고 박박 우기고 있다

 

뚝딱

허공에 집 한 채 지어 놓고

갑옷으로 무장한 병정들의 경비가

24시 내내 물샐틈없이 삼엄하다

 

날마다 새로 짓고

때려 부수고

총성 없는 이 지루한 전쟁은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 월간 우리5월호(통권 419)에서

                 * 사진 : 요즘 한창 피어나는 남방바람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