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순선 시집 '사람 냄새 그리워'의 시(5)

김창집 2023. 5. 14. 07:43

 

 

단풍나무

 

 

유월의 녹음 속에서

붉게 타오르다

기다림으로 서 있는 사람

 

햇빛 아래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만첩빈도리 꽃

달콤한 향기에 취해

 

기다림으로 붉게

서 있는 사람

 

 

 

 

종소리

 

 

구월 볕이 쟁쟁거리던 날

증명사진 찍으러 사진관에 갔다

30분 후 나온다 하여

시장을 기웃거리다 국수 한 그릇 먹었다

 

성당 앞을 지나는데

이명 같은 종소리 들린다

열두 시를 알리고 있다

밀레의 만종 화폭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묵도의 시간이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해도

묵묵히 자기의 길을 걸어온

애수에 젖은 종소리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전에

총총히 사라져

여운 속으로 걸어간다

 

 

 

 

참회의 시간

 

 

물빛 사이로 해초들이

아롱거리는

이른 아침

 

게 한 마리

갯가에 나와

귀여운 아기 고양이 같이

앙증맞은 세수를 한다

 

물결이 그림자 같이 다가와

날름날름 혀를 내밀어도

놀래지도 않아

 

집게발에 물을 묻혀

계속

얼굴에 찍어 바른다

 

씻어도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부끄러움같이

 

 

 

 

낮달맞이꽃

 

 

막달라 마리아같이 고운 얼굴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사무쳐

해가 떠오르는지도 모른 채

기도하다가

낮달맞이꽃 되었다

 

송이송이

십자가

가슴에 품고 있다

 

달이 지고

꽃이 지는 순간까지

묵묵히

나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야 할

 

 

 

 

한담 길

 

 

맑고 청아한 피리 소리 들려오는

옥빛 바다

하얀 손수건을 흔드는 물결 위로

백사장 모래처럼 담박한

갈매기 날아간다

 

한대코지 따라 걷노라면

무심한 세월 앞에

갯메꽃 한 송이

손을 흔든다

 

 

                      * 김순선 시집 사람 냄새 그리워(한그루,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