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계간 '제주문학' 2023호 봄호의 시조(3)

김창집 2023. 5. 15. 00:35

 

 

김유정역을 지나며 - 김영란

 

 

수줍은 사랑고백처럼 생강나무 꽃 피어요

옴팍한 떡시루 같은 봄·봄 실레마을

야윈 목 앓는 소리로 노란 꽃이 피었어요

 

청량리 경춘선 타고 배웅하는 봄바람

그토록 살고 싶던 스물아홉 생의 벼랑

유정도 유정하여서 역으로 남았을까요

 

받지 못한 답장처럼 삼월에 눈 내려요

점순이 고 가시내는 닭갈비를 판다네요

그대는 마지막 편지 누구에게 쓸 건가요

 

 

 

 

움파야 김영숙

    -자살미수사건 판결문을 보고

 

 

들려줘 남은 너의 이야기

우린 그게 궁금해

 

속대 노란 오늘은

많이 아플지 몰라

 

모두가 기다리고 있어

네가 쓸 페이지를

 

 

 

 

하류 예감 - 김정숙

 

 

갱년기가 사춘기보다

몇 배 더 무섭다며

 

몰아치고 휩쓸리며 혼미한 정신 들쑤실 때

 

누가 나

정리 좀 해줘요

끝도 없는 NO년기

 

 

 

 

봄의 설계도 - 김진숙

 

 

하마터면 밟을 뻔했다

꽃의 안간힘을

낙엽 이불 끌어당겨 겨울 넘긴 노루귀

살아서 돌아온 사람 그 눈빛이 그럴 거

 

그 환한 눈빛에 그만

무릎 꿇고 앉았다

언 땅을 뚫기 위해 끌어주고 밀어주고

조막손 맞닿은 온기

젖 빨던 힘이 그럴 거

 

언제나 봄의 문장은 꽃이 먼저 쓴다지만

찬바람 오래 머물던 젖은 땅에 닿아 보면

옳거니 박수 소리가

귓바퀴에 감길 거

 

 

 

 

활을 쏘다 오영호

 

 

잡생각 다 지우고

비정비팔(非正非八)로 서서

무심의 가슴으로 하늘의 기를 모아

천천히 활을 들여 올려

과녁 향해 겨눕니다

 

팽팽한 시위 끝에

부르르 떠는 화살

톡 놓자

하늘길 내며

날아가 맞는 순간

쌓인 한

카타르시스

엔도르핀 번집니다

 

 

                                                 * 계간 제주문학2023년 봄호(통권 80)에서

                                                      *사진 : 요즘 한라산에서 피어나는 설앵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