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월간 '우리詩' 5월호의 시(2)

김창집 2023. 5. 16. 00:15

 

 

- 김미외

 

 

나무는 언제나 볼 수 있는 거라 생각했어요

새순 돋은 잎이 무성해지고 초록이 노을빛으로 스며드는 거라 생각했어요

 

본다,라는 말이 어찌 이리 아린지요

눈 한번 깜박이면 세상을 다 채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동공을 크게 뜨면 꽃이 피고

어느새 손바닥에 꽃이 올려져 있으니까요

 

꽃을 빤히 들여다보려니 눈이 아파와요

이 통증이 과연 눈에서 오는 것인가, 그러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면 깜깜한 어둠

 

걸음이 멎고 울음이 흔들려요

 

검은 나무 검은 꽃 그리고 검은 당신

 

봄이 멈추고 빛이 사라져 이렇게 끝나고 마는 것인지

 

두 손을 비벼 손바닥을 두 눈에 대고 마법을 걸어요

 

괜찮아, 눈을 뜨면 여전히 나무를 볼 수 있을거야

봄은 내게서 떠나지 않을 거야

 

 

 

 

 영점사격 - 김성중

 

 

버스에서 내려 배를 타고 한참이나 들어가

물안개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소양강변 신교대에서

항공모함 같은 288밀리미터 훈련화를 신고서

구보를 하고 선착순을 하고 맹훈련을 하던 훈련병은

발뒤꿈치가 깊게 파여 피가 나고 곪아버렸네

 

어느 날 훈련병들은 M16소총의 영점을 잡는 영점사격을 했는데

어떤 훈련병들은 훈련받은 대로 사격하여 합격을 했고

불합격한 훈련병들은 뺑뺑이를 돌고 돌았네

나는 아무리 조준을 잘 하고 총을 쏘아도 탄착군 형성이 안 되어서

눈발이 조금씩 날리는 신교대 사격장에서 뺑뺑이를 돌고 또 돌았네

마지막엔 조교가 내 총으로 쏘아 보았는데도 탄착군이 안 생겼고

나는 엉터리 같은 총으로 영점사격을 하면서 뺑뺑이만 돌았던 것이었네

 

나는 누구를 죽이려고 사격연습을 했던가

기계처럼 시키는 대로 훈련하고 총을 쏘았을 뿐이네

 

 

 

 

홍매화 - 이화인

 

 

해가 진 하늘가에 붉은 산노을이 이울고

달이 없는 밤하늘에 별들이 다투어 꽃 피면

산은 어둠에 묻혀 산새 울음소리 외롭다

풍경도 잠든 절 마당에 홍매화 절로 진다.

 

 

 

 

계절의 물속에서 박동남

 

 

종일 해는 물결과 함께 그림자놀이를 즐기고

물의 힘줄을 거슬러 다니던 물고기는

감촉에 맛 들인 재미를 잠시 접어두고

물에 잠긴 낙엽 그늘 속을 살핀다

사랑하기 좋은 장소는 조용하고 은밀하다

겸손을 끌어안고 납작 엎드려

일렁이는 물그림자 흔들림에 자세를 낮추다가

수면 위에 올라와

해와 몇 번씩 이야기하고

떼 지어 다니는 동료들을 만나

승부를 따지지 않는 대열에 끼어든다

살랑살랑 사랑하고

놀멍놀멍 살아야지

몇 초 앞을 예상하는 일은 나중 일이고

그냥 그렇게 아침과 낮과 황혼을

즐거운 부레로 사는 일이다

 

 

 

 

새와 나무 - 성숙옥

 

 

뻐꾸기 소리에

참나무가지가 휘청인다

 

가지에 얹힌 소리의 공명

 

햇살 벼린 음색에 한눈팔아 버린 나무

 

잎을 부풀리는 새소리가

서 있는 나무의 즐거움이고 빛인 것을

 

눈 뜬 허공이 소리의 리듬을 타는 것은

그대와 나의 하루가 섞였다는 것

 

한 방향의 시간 속을 같이 공유했고

평온한 허공에 가지와 소리가 섞였다는 것인데

 

푸른 그늘 속을 어우러지다

끌린 소리 끊기고 잎도 떨어지며

겪게 될 나무의 심정에 닿아본다

 

그것은

내가 그대를

알기 전으로 돌아가야 하는 일만 같아서

 

 

 

                                 * 월간 우리5월호(통권 419)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