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신자 시집 '용수리, 슬지 않는 산호초 기억 같은'(2)

김창집 2023. 5. 17. 00:02

 

 

용수리 거욱대*

 

 

배냇냄새 그리울 땐 화성물 찾아간다

모나고 거친 돌이 몇 백 년 버티면서

비명도 절규도 없이

우두커니 서 있다

 

노략질 바다에서 내몰리고 쫓긴 날들

우금 하나 쇠솥 하나 탑 속에 묻으면서

만선의 제사상 위로

표류기를 다시 쓰네

 

그 여름 태풍일까 자연의 신비일까

사납던 매부리는 세월에 깎여지고

얼굴엔 소금 꽃 몇 점

하얗게 피어 있다

 

이 세상 누구인들 바란 대로만 살아가랴

빌엄수다 빌엄수다 밤새워 기도하던

어머니 따라나선 길

대물림으로 서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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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욱대 : 용수리 바닷가에 있는 방사탑 2호로 마을의 재앙을 막기 위해 둥글게 쌓아 올린 돌탑이다. ‘화성물가까이에 있는 탑이라 해서 화성물탑’, ‘화성물답이라고 불리며, ‘, 답단이, 답데, 거욱, 거욱대, 가마귀 동산, 매조재기탑(매조제기)’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산자고

 

 

거친 들 내리막길

먼 바다 바라보며

잡초 틈을 비집고

애잔히 또 피었네

백합과 다년생 초본

소녀 같은 들풀 꽃

 

누굴까

눌러 감춘

억하심정 있는 듯

보고파 애태우며

길게 뻗은 줄기 끝

산자고 날고백 같은

여섯 잎 희붉은 꽃

 

 

 

 

고향집

 

 

어머니 그리워서 늦은 밤 찾아갔네

황하게 불이 켜져

혹시나 하는 마음

어머니!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불렀네

 

이사 온 낯선 남자 누구냐고 물었네

무뚱에 손때 묻은 유모차도 없어지고

못 보던

신발 몇 켤레

제집이라 버텼네

 

툇마루 바라보며 만조가 된 서운함

우리 집이 아닌데

나 어쩌란 말인가

내 고향

내 영혼의 집

내 꿈 살고 있는 집

 

 

*군산에 있는 애기업은 바위

 

 

소도리질*

 

 

낯선 곳 서성이는 이야기 불러 모아

허구의 세상 속에 빠져드는 여편네들

한가득 채워 놓고서

다른 세상 또 찾네

 

메뉴는 삼신할망 자청비 영등할망

갖은 푸념 덧붙여 탄생하는 스토리텔링

일곱 살 아기업게가

힐긋힐긋 엿듣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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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리질 : 남의 말을 이리저리 소문을 퍼뜨리는 일

 

 

 

 

동백

 

 

 

투욱 툭 떨어지는

동백꽃 저 꽃송이

 

이제는 가자하며

저 벌건 눈물방울

 

그렇지

나도 꽃이지

가야 할 때 됐나봐

 

어쩌랴

가지 끝 부여잡은

내 붉은 맘

 

하늘도 피었다 지고

당신도 간다는데

 

한 송이 동백 송이는

피고 나면 지는 법

 

 

       *김신자 시집 용수리, 슬지 않는 산호초 기억 같은(한그루, 2023)에서